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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Sep 30. 2015

부모님에게도 서른은 있었다

서른 그 부근의 어느 멋진 날

마카오, 딸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는 아버지.

부모님에게도 서른은 있었다. 철없는 이십 대를 지나 서른을 맞이하며 그들은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책상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엄마의 사진을 발견했다. 2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모습엔 브이를 그린 채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젊음이 고스란히 멈춰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젊은 서른이 있었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엔 항상 지금의 나이만 있었을 뿐, 내 부모님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과거에는 어둡기만 했다.

 

나를 낳고 보낸 어머니와 아버지의 서른은 어땠을까. 힘들었을까. 행복했을까. 슬펐을까. 닿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로 늘 매일 밤 동경에 잠겼을까. 자신의 삶을 후회했을까.


나는 부모님이 살아온 뒷모습만 알 뿐인지 모진 바람을 맞고 견딘 앞 모습은 자세히 볼 수 없다.

나를 낳고 살아가면서 느낀 세월의 쓴 맛에 그들이 흘렸을 눈물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다.

항상 등을 올리고 새우처럼 굽어진 채로 잠든 아버지의 뒷모습이나 당연하게 거실로 들어가 설거지만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만 바라봤을 뿐 그들의 마음을 자세히 헤아린 적이 없다.


늘 내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랐고, 내가 어떤 감정인지 당연하게 알아야 했었고 나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반대로 그들을 어루만진 적은 없다.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나를 키우기 위해 당당히 세상과 맞서 싸웠을 그들의 서른을 기억해내지도 추측할 수도 없다.


이제 와서 사진 한 장에 갇힌 어머니의 서른을 바라본다. 누군가 어머니에게 당신의 서른은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자식 키우느라 서른 가는 줄도 몰랐다고 말하면' 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서른은 오직 나를 위해 조금 더 가난했고, 추웠으며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매일 밤 많은 별들을 올려다 봤으리라 짐작한다.

잊지 말아야지. 부모님에게도 서른은 있었다는 것을. 그 서른의 팔 할에 내가 중심이었다는 것을.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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