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그 부근의 어느 멋진 날
부모님에게도 서른은 있었다. 철없는 이십 대를 지나 서른을 맞이하며 그들은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책상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엄마의 사진을 발견했다. 2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모습엔 브이를 그린 채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젊음이 고스란히 멈춰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젊은 서른이 있었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엔 항상 지금의 나이만 있었을 뿐, 내 부모님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과거에는 어둡기만 했다.
나를 낳고 보낸 어머니와 아버지의 서른은 어땠을까. 힘들었을까. 행복했을까. 슬펐을까. 닿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채로 늘 매일 밤 동경에 잠겼을까. 자신의 삶을 후회했을까.
나는 부모님이 살아온 뒷모습만 알 뿐인지 모진 바람을 맞고 견딘 앞 모습은 자세히 볼 수 없다.
나를 낳고 살아가면서 느낀 세월의 쓴 맛에 그들이 흘렸을 눈물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다.
항상 등을 올리고 새우처럼 굽어진 채로 잠든 아버지의 뒷모습이나 당연하게 거실로 들어가 설거지만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만 바라봤을 뿐 그들의 마음을 자세히 헤아린 적이 없다.
늘 내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랐고, 내가 어떤 감정인지 당연하게 알아야 했었고 나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반대로 그들을 어루만진 적은 없다.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나를 키우기 위해 당당히 세상과 맞서 싸웠을 그들의 서른을 기억해내지도 추측할 수도 없다.
이제 와서 사진 한 장에 갇힌 어머니의 서른을 바라본다. 누군가 어머니에게 당신의 서른은 어땠냐고 물어본다면 '자식 키우느라 서른 가는 줄도 몰랐다고 말하면' 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서른은 오직 나를 위해 조금 더 가난했고, 추웠으며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매일 밤 많은 별들을 올려다 봤으리라 짐작한다.
잊지 말아야지. 부모님에게도 서른은 있었다는 것을. 그 서른의 팔 할에 내가 중심이었다는 것을.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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