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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Oct 22. 2015

나는 엄마의 서른을 훔쳤다

서른 부근의 어느 멋진 날들

엄마의 모습은 어디서나 똑같다

"엄마, 엄마의 서른은 어땠어."

"어떻긴 뭘 어때, 너 키우고 있었지."

"......"


엄마는 스무 살에 나를 낳았다.  어린나이에 나를 낳은 탓에 나이 차이가 스무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내가 서른을 넘길 무렵 엄마는 참 천천히 늙는구나,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천천히 늙는 게 아니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저학년도 아닌 고학년도 아닌 중간에서 걸쳐 있던 나는 여전히 엄마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혼자서 학원도 다니고 씩씩하게 자랐지만 엄마의 그늘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진 못했다.


매해 돌아오는 내 생일의 무렵이면 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김밥이며 잡채며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며 내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내가 부반장으로 활동을 할 때는 운동회에 참석해서 친구들에게 요구르트를 돌리기도 했으며, 집에서  나에게 많은 걸 챙겨주며 나를 키워야 했다.


그때 당시, 엄마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서른을 짐작하지 못했다. 서른이  어디쯤에 속하는 나이인지도 몰랐으며 엄마는 엄마였지, 엄마의 나이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랬던 엄마에게 엄마의 서른은 어땠냐고 묻는 내가 문득 바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서른이 그토록 좋았는데, 엄마는 서른도 만끽하지 못했구나.

엄마의 서른은 열 살이 된 아들 하나를 키우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엄마의 서른을 가져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서른을 안아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도, 앞으로도 잘 자라주는  것뿐이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많았던 10살의 나이에 엄마의 서른을 고스란히 가져갔으니 나는 엄마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해도 할 말이 없다.


나는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며 글도 쓰고 하고 싶은 것을 이루며 살았던 서른을 보냈는데, 엄마의 서른을 훔쳐간 것 같아서 미안하다.


앞으로   때마다 를 꼭 안아줘야겠다.  아니, 그보다 엄마의 서른을 꼭 안아줘야겠다.

나에게 투자한 마의  과연

행복했을 힘들었을.



지난 여행 , 드레스덴에서 엄마를 위해 쓴 글을 선물로 바친다.


엄마를 안아줘도 돼

힘껏

가슴이 맞물릴 테지만

우린 한 몸이었으니

서로는 서로의 살을 어루만지며

꼭 안아줘도 돼


언젠가 둘 중 하나 사라지면

서로의 몸은 추워질 지도.


이제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엄마를 뜨겁게

안아줘야 해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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