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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Dec 28. 2015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다

서른 부근의 어느 멋진 날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았다. 서른 이상을 그렇게 살아왔다. 마음을 다바쳐 좋아죽을 것 같았던 여자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뱉지 못했다.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를 좋아해줬던 이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철저한 이기주의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귓속에 담아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부끄러웠고, 무언가 아껴두고 싶었고 가장 거창한 날에 말해야 될 것만 같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까지 까다롭게 굴었다.


어머니가 지난 여름 췌장암이라는 판정을 병원에서 받고 왔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매미처럼 어머니의 몸에 달라붙어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벼락같은 말이 귓가에 붙어 1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디서나 어머니를 떠올리며 화장실에서, 방에서. 거리에서 펑펑 울고 다녔다.

미안하다는 말도 했고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 사랑이 닳고 닳을 만큼, 혀가 빠질 만큼 사랑을 말했다.


다시는 못 볼 사람 앞에서 사랑이란 말은 아깝지 않았다. 매 초, 매 시간 해야되야 할 말이었고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꼭 필요한 말이었다. 가슴 속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말이, 사.랑.해.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그동안 내가 사랑이란 말을 아끼고 살았던 것이 절망스러웠고 내 자신이 싫어졌다. 왜 진작, 사랑이란 말을 자주 하지 못했을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했을까.


사랑이란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정말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는 표현에 서툴뿐이어서 말하지 못했을 뿐인데도 그런 말이 어머니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밀 검사가 있기까지 한 달을, 한 시간을 시한부처럼 살았다. 어머니가 걷는 모습, 웃는 모습, 돌아누워 자는 모습, 발가락을 꼼지락 거릴 때 몇 번째의 발가락을 먼저 움직이는지 등 모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나는 정말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내가 원수같이 느껴졌고 미련스러운 나머지 고통은 몇 배가 되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날 때 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후회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때서야 '사랑'이라는 말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있을 때 더 크게 사랑을 말하고 안아주고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함께 잠드는 것.

햇살을 받아 눈을 뜨고 오늘 잘잤다. 라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며 하루가 무탈하게 시작된다는 것에 대해 감탄을 터트리는 일이야 말로 살아 있을 때 자주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간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아끼고 살았다.

그 좋은 말을 아껴서 부자가 된 것도 아닌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사랑한다고 자주 뱉지 못했다.

평생 후회할 것이다. 앞으로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않으면 죽어서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나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눈물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사랑한다 말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을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모든 건 미련이 된다.

사랑을 아껴선 안 될 것이다.

생과 시간과 사랑하는 이의 삶은 내 곁에서 유한하지 않다.


글 사진 이용현

https://www.facebook.com/writer1004 페이스북 페이지. 울지마, 당신 

#사랑한다 말해야 할 때#

-어머니는 몇 번의 정밀 진단검사 끝에 췌장의 변이 이상으로 판단이 되었으며 현재 췌장암까지는 아니나 지속적인 검진을 통해 건강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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