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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Apr 06. 2017

관계의 꽃은 언제나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사적인 그리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사온 꽃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꽃다발을 들고 있는 할머니에게 시선이 끌린 후 발길을 멈춰섰다.


이 꽃은 무슨 꽃이죠? 이름도 모른 채 오천 원에 사온 꽃은 방안에 봄이 온 것처럼 화사하게 만들었다.


꽃을 오래 보려면 물을 자주 갈아줘야 한다는

플로리스트의 말에 따라 먹고 남은 플라스틱 생수병을 잘라 물을 채워넣고 꽃병을 만들었다.


생수병에 넣어놔서 그런지 갑자기 꽃의 얼굴이 시든 것 같은 느낌에, 다른 병은 없냐고. 내가 덜 예쁘지 않냐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아 폭이 깊은 와인 잔으로 갈아 주었더니 결 모양이 났다.


갓사온 꽃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만개는 하지 않았으므로 화사하고 화려하다는 생각은 갖지 못했다. 여기서 조금 더 피어 있으면 예쁠 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진을 찍어 플로리스트에게  보내줬더니 그녀는 자신의 숍에서 키우고 있는 같은 꽂을 보여주며 이야기했다.


그녀의 꽃은 조금 더 예쁘게 만개해 있었고
내가 사온 꽃은 덜 피어나 있었다.

'내가 꽃을 잘못 사왔나..'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건넨  한 마디에 마음이 주저 앉았다.

몽우리가 더 좋은 거예요.

더 오래볼 수 있으니.


지금 만개하지 않았으므로 그때까지 더 오래지켜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몽우리라 더 오래볼 수 있다는 말이 그토록 좋았다.

너는 왜 그녀가 보여준 꽃처럼 예쁘지 않냐고

꽃이면 활짝 피어있어야 되는 게 아니냐며 투덜대던 나를 무너트렸다.


조급하고 서투른 마음으로 인해 나는 꽃에게 괜한 미움을 주고 만 것이다.


관계에서도 이 서두르는 마음 때문에 서로를 다치게 했던 때가 많았다.


나는 이만큼 마음을 주는데 당신은 왜 나만큼의 마음조차 열어보이지 않는지. 이쯤이면 활짝 감정을 줘보일 때도 됐는데 왜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


알고보면 상대도 저 꽃처럼 내 의지와는 달리 기다림이 필요했고 겨우 몽우리 하나 정도 진 것 뿐이었을 텐데 서둘러 마음을 달라고 재촉했다.


그리하여 상대는 지친 나머지 만개는 커녕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내 앞에서 어떤 잎도 펼쳐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나에게 보이고 싶은 감정이 아직 몽우리라서, 천천히 조금씩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인데 어쩌면 모든 관계에서 성급했기에 많은 사람들을 달아나게 했던 것은 아닌지.


아직은 덜 핀 꽃. 그리하여 기다림과 함께 곧 피어날 꽃. 비록 천천히 더디긴 하지만 오래 보면서 알아가는 시간을 달라는 그의 요구와 달리 나는 재촉하기만 했음을.


상대의 상태를 짐작하는 눈이 나에겐 없었다.

내가 보내는 마음만큼 당신도 마음을 줘야한다고 서둘렀다.


플로리스트의 말처럼 오래볼 수 있어서 더 좋다는 몽우리 같은 기다림이 부족했다.


몽우리라 더 오래볼 수 있어 좋다는 그 말은 왜이토록 또 나를 약하게 만드는가.


모든 설레는 만남 앞에서 서로의 관계가 만개할 때까지 길들이고 보살피며 기다림이 필요한, 그런 여유와 차분함을, 인내를 가질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생각해달라는 욕심 부릴 것임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다 만개하지 않은, 아직 기다림이 필요한 몽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이 꽃은 나의 정성과 관심.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금더 오래볼 수 있어서 좋은 몽우리라서.

천천히 더딘 나의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다진다.
모든 좋은 관계는 일정 기다림이 지나 꽃이 핀다.

그러니 애써 만발하지 않는 사랑에 스스로 무너지지 말자.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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