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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Apr 16. 2017

당신은 여자로 살았으면 한다.

자식으로서 바라본 엄마에 대한 기록


엄마를 보게 된 건 한 달 만이었다.

"머리가 그게 뭐야."

"왜, 머리가 어때서."

.

"진짜 아줌마 같아!"

"그럼 아줌마지 아가씨니."


더이상 세련되지 않은, 앞머리까지 짧게 친 엄마의 헤어스타일을 보자마자 화가 올라왔다.

동네 미용실에서 실패한, 실습생이 잘라놓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달 전에도 같은 스타일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소리를 친 적이 있었다.


"머리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그 미용실 가지 말라고!"


"머리 기르는 중이야. 기르면 돼."

(태연한 척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화에 상처를 입는 엄마)


언제나 대화는 이런 식으로 마무리 되고 만다.

한 해, 두 해씩 흐를수록 엄마는 자신을 꾸미는 것에서 손을 놓고 있다.

화장대에서도 화장품이 많이 빠졌다.


그만큼 사치를 부리지 않고 꾸미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검소한 당신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지만 나는 더이상 엄마가 아름다운 여자이기를 포기하는 모습이 밉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절반은 언제나 몸이 아팠거나 마음이 아팠거나 했던 사람이기에 꾸미는 것과는 아무리 멀다해도 아프지 않고 건강한 시절에 자신을 더 아름답게 가꾸는 엄마였으면 하고,
지금 당장 극장으로 불러내 영화를 본다해도 조금은 말쑥한 상태로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엄마였으면 하는데 엄마는 점점 내 기대와는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아 속이 상한다.


이 여자가 이렇게 늙는 것이 나는 싫다. 분하다.

화사하게 자신을 꾸미던 젊은 시절과 달리 어느덧  꾸밈을 놔버린 엄마가 되어 늙어가는 모습이 내겐 아프다.


자식을 낳아 기르다 자식의 독립과 함께 여자로 태어난 것을 죄다 잃어버리고 렇게 나이를 먹다 획일적인 할머니가 되어 뽀글이 펌을 하고 마는 것이 삶의 리얼이라해도 그 리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엄마의 생을, 그녀의 생을, 그녀가 이루고 싶었던 아리따운 꿈과, 상상했던 삶을 행여나 나로 인해 대리만족하고 있다해도 나는 그녀가 엄마이기 전에 여자였으면 하고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다는 그 말에 저항하고 싶다.


자신이 꿈꾸던 여자.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살림만 하는 여자로, 자식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보낸 것이 보람이라 해도 나는 그닥 기쁘지 않다.


비록 늦었지라도, 남은 시간만큼은 그녀가 젊은 날의 여자처럼 날마다 날마다 예쁘게 살았으면 좋겠다.

여자로서. 누구의 아줌마가 아닌, 자신이 되고 싶었던 자신으로서.


사랑하니까. 나를 무사히 키워준.
당신을 사랑하니까.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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