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현 Apr 18. 2017

아,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서른부근의 어느 멋진날

엄마에게 주기적으로 꽃을 보내고 꽃이 도착할 때면 엄마는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낸다. 이것은 내가 엄마에게 준 미션이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가 지긋한 살림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행복한 순간을 느낄 수 있도록 준 미션.


김치를 담그는 엄마도, 허리를 굽혀 아직도 방바닥을 닦는,

운전면허가 없어 버스를 타는, 마트대신 시장을 좋아하는 엄마도 좋지만 꽃을 바라보며 아, 예쁘네. 라고 말하는 엄마는 더 좋다. 그리하여 꽃을 정기 구독 신청하고 엄마는 꽃을 받아보고 있다.


꽃 도착하면 사진은 꼭 찍어. 알았지.

안 찍으면 안 되냐고 묻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멀리 있는 나도 보고 싶어. 같이 기쁘고 싶어.

지금 안찍어 두면 시들어서 꽃의 예쁜 순간을 놓쳐. 못 봐.

살아 있을 때 찍어 둬."


아이러니하게도 꽃이 도착한 오늘, 사진을 찍어 보내는 엄마의 사진과 함께 여자 동기에게 대학 시절 현대문학을 가르친 스승님이 돌연사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교수로서 흠모했기에, 동경했기에 김선생님의 모든 수업은 죄다 찾아들으며 천재성에 가까운 지식에 감탄하며 훗날 당신이 돌아가시면 뇌 속에 있는 지식은 누구것이 되나. 조금만 나에게 주고가면 안되나 했던 생각을 강의실에 앉아 하곤 했거늘.


그리고 새내기 때 오티에서 당신이 내게 준 그 한마디가 그토록 멋졌는데.

"국문과를 나오고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7월에 만나기로 해놓고, 게으른 탓으로 미룬 만남이 끝내 후회로 온다.

거하게 술에 취한 다음 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눈을 마주치면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조병화의 시를 읇으며 머리를 쥐어박곤 했던 선생님과의 추억이 오늘따라 생생하게 온다.

뼈에 박힌다.


살아 있을 때 찍어 둬. 자주 봐. 했던 엄마와의 미션을 선생님과도 지켰어야 했나.


아,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글 사진 이용현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낳고 부모님이 처음으로 드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