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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May 03. 2017

자주 운다는 그녀에게

자식으로서 바라본 엄마에 관한 기록

한때 많이도 울었던 그러나 요즘은 갱년기를 지나 자주 우는 듯한 그녀에게 4주 동안 꽃을 주문해 배달했다.


집으로 꽃이 도착할 때마다 그녀는 인증샷을 찍어 나에게 보내주었고 사진과 함께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도 고마워. 예쁜 꽃 잘 받았다.

꽃같이 아름답고 늘 깨어 있어라.


몇 주뒤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사진 속에서 만발로 피어 있던 꽃은 이미 지고 없었다. 그즈음이면 다시 새로배달된 꽃이 화병에 물을 머금은 채 꽂혀 있었다.


집에 꽃이 있는 것만으로 방이 환해지는 걸 느끼곤 했지만, 무엇보다 엄마의 환한 얼굴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이따금 통화를 하다 수화기 너머로 홀로 우는 듯한 엄마의 표정을 상상하는 일은 괴로움이었다.
 또 우느냐고 물으면 너 때문에 울지, 슬프니까 울지. 울고 싶을 때 실컷 울라며. 엄마는 울면 안 되냐고. 타박타박 대면서도 똑똑히 이야기했다.


울고 싶으니까.


수없이 감정이 왔다 갔다 하던 갱년기의 정점에서 나는 도무지 엄마의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서 아니 감당할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 줄곧 그만 좀 울으라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 하는 멋 없고도 멋없는 말이었다.


딸이 아닌 아들로의 시선에서 엄마의 속을, 아니 여자의 속을 안다는 것은 수학 공식을 푸는 일 만큼이나 어렵고도 난해한 것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기뻐할 수 있는 선물을 주자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꽃이었다.

꽃을 좋아해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었다는, 그러나 그녀의 청춘은 방직공장에서 꽃대신 옷을 짜는 일로 젊음을 보냈기에 그녀의 꿈에서 멀어진 일에 가장 가까운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꽃만 보면 좋아했던 기억이, 이른 아침 꽃시장에서 한 다발의 꽃을 사다가 화병에 꽂아두던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미 지고 말 꽃. 시들면 추한 모습만 남기는 꽃.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아직 그녀에겐 묻진 못했다. 다만 자주 운다는 그녀에게 환한 꽃이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뿐.


마음이 순간순간 피고 지는 꽃과 같아서 울었다가 또 울다가 하는 그녀의 나이 쉰하고 넷.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여자보다 더 많은 꽃을 보내고 있는 나는 서른 넷.


글 사진 이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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