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부근의 어느 멋진날들
오래전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하다 말하지 않았고
대신 불행하다 말했다.
어느날 불행으로 투덜거리는 나에게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삶으로 태어난 걸 감사해 본 적 있니.
항상 감사해라. 그래도 살아있잖니.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대로 생명을 자랑으로 여기기엔 마음에 넣어둔 여유의 잔고가 부족했다.
늘 초조했고 미래의 불안에 시달렸고 남과 비교했고 다소 불안정한 집안 상황에 미친 갈대처럼 흔들렸다.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누가 나의 행복을 다 갔다 썼냐고 소리 지르고 울었다. 그랬다. 나는 곧 터져버릴 화산같았다. 울분에 데워진 뜨거움이 늘 머릿속에서 끓어올랐다.
그러다 한순간 느꼈다. 내가 이러다 미쳐버릴수도 있겠구나.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나를 진정시키며 다시 말했다.
아직, 살아있잖니.
언젠가는 달라진단다.
좋은 일들이 올 거야.
거짓말! 거짓말!
그러나 어머니는 초연했다.
삶을 사랑으로 여기고 자랑으로 여기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황했고 넘어졌고 스스로를 처참하게 무너트렸고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날 제주도 올레길에서 바라본, 굽이진 길 하나가 아름답다는 걸 느끼고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굽이진 길이 이렇게 아름다울수도 있구나.
지금 내 삶도 예쁘진 않지만 언젠가 굽이져있는 내 지금의 상황도 머지 않아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어머니가 짧게 되내이던 언젠가는 달라진단다. 그 말이 사실이 될 수 있겠구나.
나는 맨발로 올레길을 걸으며 삶의 감촉을 차근차근 느껴보았다. 바람, 공기, 흙, 비, 숨소리 등등.
나는 살아있었다. 나는. 살. 아. 있.었.다.
나와 내 주변의 생명을 다시 느끼자 용기가 생겼다.
살아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위로로 다가왔다.
나의 마음은 아직 폐허에 갇히지 않았었다.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 도전해보자.
그러고 난 뒤, 나를 사랑해주는 자존감이 생겼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매순간 감사하며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고자 노력했다.
삶이란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내다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운명과 삶을 사랑해버리기로 했다.
아직 살아있잖니, 의 주문이 얼마나 오래갈 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태어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매순간에 감사함을 느끼려 노력하고 내가 원하는 삶에 이르고자 갈망한다는 것이다.
2월 24일, 힘들 때마다 견디고자 썼던, 나와 타인에게 위로받고자 썼던 문장들이 이제는 책이 되어 나온다. 그 순간을 기약하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다.
어머니가 줄곧 내 입에 넣어주던 말을 꺼내본다.
언젠가는 달라진단다.
아직 살아있잖니.
#울지마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