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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Sep 24. 2020

이번 추석에도 할머니들이 없겠구나

조용한 명절에 부치는 글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랐다. 엄마 아빠는 기회가 되면 나를 양가 할머니들의 품으로 곧잘 맡기곤 했는데 마치 맡겨놓은 택배처럼 일정한 시기를  머물다 때가 되면 나는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들 나를 돌보는 데는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 평소 겁도 많고 순둥순둥한 나머지 가에 내놓으면 물이 무서워서 금방 돌아왔고, 의 집에 따라가서도 말썽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거기 동네 할머니들이 시키는 모든 심부름은 잘 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떼를 쓰는 일도 악을 부리는 일도 없었다.


그런 나를 할머니들은 여간 예뻐했다.

친할머니와는 어린 나이에도 고스톱을 자주 쳤고, 외할머니와는 산책을 자주 하면서 동네 마실을 자주 다녔다. 무엇보다 외할머니는 술에 취한 외할아버지를 엄청 무서워했는데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외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외할머니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다.


나를 애정하며 아꼈던 그런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어느 첫 추석.


다들 여기저기 선물을 사는데 이제 더 이상 할머니들의 선물을 살 일이 없어졌다는 것. 늙고 주름진 할머니들을 시골에서 다시 마주 볼 수 없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가만히 있어도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틈이 천지인 나를 가만가만 다 챙겨주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곁에 없는 것이다.


제법 사회생활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비싼 옷도 사드릴 수 있는데 이젠 할머니이이이!!! 라고 애교 떨며 불러도 대답하는 사람은 없으며 나를 보기만 하면 좋아하던 그들의 늙은 웃음 소리도 이제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헛헛하게 한다.


양가의 모든 할머니들이 없는 이번 추석도 어느 만남의 기쁨도 없이 제법 조용하게 흘러가겠다.


강아지라며, 내 새끼라며, 요놈이라며, 주름진 손으로 나를 키워주고 애정 해주던 할머니들의 반김이 더더욱 그리운 명절이다.


생각한다. 할머니를 보내는 발인 마지막 날, 화장한 유골함을 제일 먼저 가슴에 품고 할머니와의 추억을 깊이 새겨 넣었던 일, 영정 사진을 들고서 할머니의 방안을 휘휘 돌구경시켜 줬. 그 마지막 인사 하나가 헛헛한 마디마디에 작은 위로 준다.


할머니들 모두 떠나보내는 손주의 인사가 제법 무겁고 정중했으므로. 당신들이 나를 아끼고 좋아한 만큼이나 사실 나도 그들을 좋아했고 친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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