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현 Oct 13. 2020

대체 네가 엄마한테 잘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어느 날 누구든 나에게 "넌 엄마에게 잘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문득 엄마를 생각하며 그간 해준 일을 하나하나 생각해보았다.


가만가만 엄마의 말을 듣고 심부름을 했던 일, 저녁 무렵 식탁 옆에서 너 마늘 좀 빻아, 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절구통에 마늘을 통째로 넣고 눈물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마늘을 빻던 일.

엄마 친구랑 어디 가는데 용돈 좀 줘. 우스게 소리로 말하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돈 십만 원 남짓 신경 안 쓰고 쿨하게 이체했던 일. 그 외도 많은 일들이 있지만 엄마가 나를 먹여 키운 일에 비하면 감히 엄마에게 내가 잘했다고 한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나 문자 보내는 것 좀 알려줘."

50세가 갓 되던 엄마는 무서운 선생님에게 질문하듯 자신의 아들을 앞에두고 주저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엄마는 이따금 맞춤법은 틀여도 문맹은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핸드폰 쓸  줄 몰라?"

나는 정말 재수 없이 마치 큰 거라도 알고 있는 듯 무겁게 질문하는 엄마에게 너무 가볍게 대답했다.


"이거 누르고, 이응 다음에 한 번 더 누르면 히읗. 아니! 이거! 한 번 더 누르면 된다니까."


생각보다 이해가 안 되는지 내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엄마에게 금세 화가 났다.

나는 그때까지 엄마를 대부분의 젊은 세대 엄마처럼, 손에 폰이 쥐어지면 당연히 타이핑을 칠 수 있는 사람의  수준으로 여겼다.


목소리의 톤조를 높이는 나와 달리 엄마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고, "됐다! 알려주지 마!" 갑자기 신경질을 내면서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오히려 당황한 기색보다 엄마는 왜 이런 것도 몰라!라는 핀잔을 주면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채 밖으로 나갔다.


내 엄마는 왜 이런 것도 못할까?싶은 마음에 울분이 쌓이면서도 책상에 앉아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더라.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빠져들어갔다.


10년 가까이 앉아 있던 책상에 있으니 그간 엄마가 이 곳으로 나에게 퍼 날랐던 과일이 생각났다.


공부는 하지도 못하면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내 수발을 들었던 사람.

국민학교 겨우 하나 졸업하고 생계 전선에 빠져들어 자기 고생한 만큼 자식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새벽에 일어나 너 잘되길 바란다고 기도를 올리던 사람.

지식은 없어도 지혜는 많아서 주변에 따르는 사람도 많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어쩌면 나만 아닌, 모든 사람에게는 칭찬과 좋은 소리를 듣고 있을 사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을 때, 내가 엄마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봤을 때 몇 번이나 버벅거리고 옹알이나 하고 있는 나에게 넌 왜 이런 것도 몰라! 했겠냐 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나는 겨우 휴대폰 자판 치는 거나 알려주면서 엄마는 왜 이런 것도 몰라!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 말을 듣고 있는 대체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결국 엄마의 머릿속엔 자식은 키워봤자 소용없다, 라는 배신당한 부모님들의 유행어가 스쳐 지나가고 애써서 가르쳐 놨더니 다 컸다고 소리나 벅벅 지르는 아들놈이 갑자기 이놈의 새끼로 보였겠지.



약 일주일 뒤 주말에 집으로 다시 내려온 나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휴대폰 가져와봐."


지난번 사태로 기분이 많이 상한 듯했으나 이까짓 거 안 배우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체념을 한 건지, 아니면 한 번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건지 엄마는 고분고분 자신의 휴대폰을 열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로 미안함을 담아 나는 다시 차분차분 하나부터 글자 쓰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을 아래로 포개서 안녕. 뭐해. 어디니. 밥은 먹었니. 잘 자. 등 가장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문장으로 연습했다.


"이거 다음에 이거. 그래. 이거 쓰고 다음에 이거 누르고."


30분 남짓 기초 단어를 계속해서 연습하고 나자 감이 왔는지 엄마는 이 정도면 됐다야. 하고 손을 뗐다.


"카톡은 이렇게 보내는 거고 이모콘은 이렇게 쓰면 돼."


카톡에서 사람 찾는 법, 이모콘 보내는 법도 다시 몇십 번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음 주말 다시 엄마의 집으로 내려온 날 나는 엄마를 붙잡고 자판 익히는 연습을 했다.

진도에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문장도 쓰지 못하는 첫날의 엄마보다는 내 마음이 보기도, 생각하기에도 편했다.


대체 "엄마는 왜 이것도 몰라!"가 아니라 짧은 문장이라도 제법 아는 엄마가 되어 있었으니까.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느닷없는 카톡이 울렸다.

엄마라는 사람으로 지정된 푸른색의 노 이미지 카톡이었다.


[뭐해.]

뻔히 일하고 있는 시간인데도 뭐해,라고 묻는 엄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녀는 지금 나에게 받은 수업을 나의 도움 없이 복습해보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뭐하는데.]

.......

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었다.

[ㄱ

ㄲㄲ

그냥 잏지]

엄마는 더딘 속도로 의미로 전달이 가능한 문장을 적어 보내고 있었다.

[엄마 이제 카톡 잘하네.]

..........

[엄마도 할 수 잇다.]


그러고 나서 한 며칠을 엄마는 계속해서 시도 때도 없이 문장을 적어 보내왔다.

뭐해. 밥먹니. 잘 자. 안녕.

그런 문장을 적어 보낼 때면 엄마가 귀엽게 느껴져서 이모티콘을 연발로 날렸다.

[엄마도 보내봐 이모티콘]

..............



나의 악덕한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전화를 거치지 않고 메신저로 이렇게 저 사람이 나에게 문장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 뒤로 엄마는 몇 날 며칠을 같은 패턴으로 문장을 적어 보내다가 한 3-5분을 공들여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들아 참 고맙다 감사하다 오늘도 이팅

내일은 무척 오늘보다 더춥데

옷튼튼이 입고 다녀 오늘도 사랑해

아들아 과일 참 맛잇꾸나 너무 맛있어 고마워


비록 엄마와의 사소한 갈등이 있었지만 순탄하게 휴대폰의 자판 쓰기 수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외롭게 있을 때나, 혹은 술을 먹고 생각이 흐려질 때,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 엄마는 이따금씩 신기하게도 응원의 문자를 보내온다.


만약 세상에서 나에게 네가 엄마에게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코 엄마에게 타이핑하는 법을 가르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정작 엄마의 메시지로 응원을 받고 있는 나이기에, 사실 그 일은 정작 나를 위한 일이었다.


어디서나 자식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서. 한 글자씩 더 쓰고 싶었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다.


[아들,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


여전히 시도때도 없이 메시지를 써보내는 엄마.

엄마라는 사람에게 카톡이 울리면 여전히 뿌듯함과 미안함이 함께 솟구쳐 오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를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