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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현 Nov 30. 2020

이제는 좋아한다는 고백을 마쳐야겠다.

스무 살 무렵 좋아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이 계셨다. 자주 술에 취해있었고, 나는 그 술자리에 자주 따라다녔다. 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선생님과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당시 선생님은 국문학 쪽에서 손꼽는 엘리트였고, 상위 1%를 졸업한 서울대 졸업생이었다.

학식이 워낙 풍부하여 나는 선생님의 지적 매력을 동경하였고 흠모했다. 어떤 날은 선생님이 훗날 돌아가시면 뇌에 저장된 모든 지식을 훔쳐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졸업 후 몇 번의 만남이 있었나. 그러다 멀어지면 다시 또 보고 싶다는 메시지나 전하던 사이가 되었던 스승과 제자였다.


그리고 안식년으로 떠난 외국에서 느닷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며칠간은 프사에 저장된 번호를 누르면 받을 듯해서, 톡을 하면 답장이 올 듯도 해서 선생님의 프사를 띄워놓고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매화는 추워도 쉽게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2년이 지난 오늘 다시 선생님이 보고 싶어 프사를 띄웠는데 대출 문의 가능합니다.라는 사진이 걸린 타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한 때 연결되었던 번호가 다른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사뭇 텁텁한 마음과 함께 속상한 생각이 든다.

나는 왜 더 많이 좋아한다고,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을 하지 못하였나.


이제는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마쳐야겠다.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으므로, 전부다 아득하기만 하여 당신의 번호도 다른 사람을 찾아갔으므로.


'대출 문의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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