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우울하지 않은 편지

유재하를 기억하며

by 이용현


문학계에 천재 시인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만 스물아홉 , 단 한 권의 시집만 남기고 떠난 시인 기형도가 있다면, 음악계에는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사라진 가수 유재하가 있다.

비록 두 살 터울로 유재하가 동생이긴 하나 감수성을 놓고 따졌을 땐 형 동생 할 것 없이 모두 고개를 젓게 만드는 예술가임에는 분명하다.


유재하는 다소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나 클래식을 익히고 작곡 작사를 모두 스스로 했던 싱어송라이터다

무엇보다 단 한 장의 앨범에 수록된 주옥같은 모든 노래들이 겨우 스물다섯. 그의 영감에서 태어난 순수 창작물이라는 것도 놀랄만하다.

그의 노래 중에 좋아하는 노래는 8번 트랙에 있는 '우울한 편지'다.

그가 부르는 우울한 편지는 따박따박 쓴 글자만큼이나 또박또박 부르는 듯해서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시 낭송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목은 우울하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다는 건 그의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가사를 해석해보면 된다.

좋은 시는 언제나 죽음이나 우울을 다루면서도 희망을 남겨 놓는 시인 것처럼

그의 가사도 곳곳에는 슬픔을 지우고 희망이 가는 길이 놓여 있음을 발견한다.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게 주려고 쓴 편질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 천천히 펴 보니

예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

한 줄 한 줄 또 한 줄 새기면서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


이 대목을 계속해서 시처럼 몇 번을 읽고 있다 보면

연인의 관계가 잠시 흔들린 거 같다.


예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로 봐서는

아마도 여자가 남자에게 서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 것이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자보다 늘 사랑받는 확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랑의 진정성을 가지고 둘 만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았을까.

그리 유추하는 것은 당시의 1980년 시대 상황을 반추해 보건대

암울하고 어두운 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고뇌와 시대적 고민들이

사랑보다 우선시되었던 것들이 많았을 터.

남자는 사랑에 자칫 소홀했을 수 있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사랑의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자는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남자는 차분차분 여자를 잡는다.

촛불처럼 흔들리는 여자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리고 노래는 이어진다.


(마주친 두눈이 눈물 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 가요. 아는 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


마주친 두눈이 눈물 겹다는 말은 여전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고

서로를 쉽게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변명도 없이 믿음만 있다면 사랑은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남자는 아무 관계 없다고 말하고

사랑으로 잠시 흔들리는 편지의 내용을 우울한 편지로 간주한 채

더 이상 이런 편지는 잊자는 내용으로 여운을 둔 채 노래를 맺는다.


특이한 것을 하나 꼽자면 마지막 줄 가사에서 우울한 편지는 이젠- , 하고 끝나는 음절에

잊어요. 버려요. 지워요. 음을 붙이면 어떤 단어도 어울리는데 뒷말을 닫지 않고

여운을 남겨 놓은 것은 이 음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사랑이 흔들릴 때 연인 중에 한 사람은 우울감에 빠진다.

그러나 그 우울은 서로를 믿는 일, 그 일 하나로 말끔하게 지워진다.


우울하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은 편지.

유재하의 명곡임에 틀림없다.


P.s

박재정과 김동욱이 부른 우울한 편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김동욱의 곡은 30대가 이야기하는 듯 쿨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담았고

박재정의 곡은 20대의 감정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비 오는 날, 제목은 우울하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은.

예쁜 가사들로 점철된 우울한 편지를 반복해 들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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