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현 Jun 19. 2023

여행의 힘

내 삶을 여행할 권리

여행의 힘

오늘도 무릎 하나 정도의 공간이 남는 좁은 이코노미석에 탄다.

페루 리마까지 날아가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23시간.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비행기에서 보내야 하는 여정이다.

이코노미석에 앉아 긴 비행을 하는 일은 많은 불편함이 따른다.


그러나 불행은 아니다. 나는 줄곧 불편한 것과 불행한 것 사이에서 흔들려왔다. 가령 좁은 방에서 사는 불편함을 불행한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적도 있었다. 내 몸 하나 편히 누울 공간이 있으면서도 좁은 곳에 사는 불편함을 불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불행의 원인을 내 자신이 아닌 밖의 것들에 찾으면서, 나는 멀쩡한데 세상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여러 나라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경험하면서 나보다 더 좁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그들은 웃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불편한 것과 불행한 것을 착각해 작은 불편도 나의 불행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으니 생각하면 부끄러운 날들이다.  


어디서나 불편한 것과 불행한 것을 쉽게 구분하고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여행이 아니라면 어쩌면 계속해서 불편한 것들을 불행이라고 여기며 살아 갔을지도 모른다. 직접 맞닿는 내 불편한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며 그래 그럴수도 있지, 라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모두 여행의 힘 덕분이다.


띵동- 하고 좌석벨트 등이 꺼지고-

머지 않아 찾아올 자유를 상상하며 나는 불편함을 견딘다. 편안한 여정은 아니지만 나에겐 이코노미석의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불행이 삶의 일부인 것처럼 불편도 여행의 일부니까.



가을에 여행 에세이 출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의 폭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