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순훈 Mar 05. 2016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네" 春來不似春

왕소군과 춘래불사춘

봄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습니다.


봄이 오는 것 같아도,  봄 같지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 때문입니다.

내 몸이 고단하고 둘러싼 여건이 어렵다면, 봄이 와도 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죠.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는구나"는 말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이 말은 원래 한 미녀 때문에 생겼습니다.


중국의 4대 미녀는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을 말합니다. 일부에서는 삼국지의 미인, 초선을 빼고 '패왕별희'의 주인공인 항우의 사랑, 우미인을 집어넣기도 합니다.


춘래불사춘-이 말은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운명을 두고 지은 시 있는 말입니다.


왕소군은 전한前漢  원제元帝의 후궁입니다.  

이름은 장이었고, 소군은 그녀의 어릴 때 부르던 이름(字)이었습니다.


그녀는 남군(南郡)의 양가집 딸로 한나라 원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후궁이 많다 보니 황제의 사랑은커녕 눈에 띄기도 어려운 것이죠.


당시 한나라는 국경을 자주 침범하던 흉노에 대해 고민하다 그들과의 우호 수단으로 공주를 보내 혼인시키는 정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주는 아니고 황족의 부녀나 신하의 딸을 황제의 수양딸로 삼거나, 황제의 후궁을 보내어 결혼시키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군주를 회유하기 위하여 외민족(外民族)에게 출가시킨 황족의 부녀를 '화번공주(和蕃公主)'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고려시대 충렬왕(忠烈王) 이후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7명의 왕에게 출가해 온 원(元)나라의 공주가 그 사례에 해당됩니다.


조선의 경국대전에 의하면, 왕의 정실인 왕비가 낳은 딸을 공주라 하고, 측실이 낳은 딸을 '옹주(翁主)'라 하여 구별하고 있습니다.

          

황제에게는 후궁이 너무 많아 일일이 직접  볼 수 없었기에, 궁중 화가에게 일러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 화첩을 보고 황제가 낙점하여 후궁을 침소에 불렀다고 합니다.  

드라마 '왕소군'


후궁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실물보다 예쁘게 그리도록 화공에게 뇌물을 주었습니다.

왕소군은 후궁으로 들어갔지만 자존심도 강하고 미모에도 자신이 있어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궁중화가 모연수는 이를 괘씸히 여겨 후궁첩에 왕소군을 실물보다 못하게 그렸습니다. 심지어 뺨에 검은 점을 그려 넣어, 소군은 입궁을 하고도  5년 동안 황제를 한 번도 만나보지도 못하게 되었지요.


연회연에서 왕소군을 본 흉노왕은 공주와 혼인하고 싶지만, 힘들면 오늘 연회에 나온 궁녀라도 괜찮다고 하자 황제가 허락했습니다. 흉노왕이 직접 지명한 미녀,  '화번공주'로 결정된 후궁이 바로 왕소군입니다.


황제는 왕소군이 절세미인인 것을 알게 되어 후회하였지만, 이미 너무 늦은 일이었지요. 황제는 크게 노하여 왕소군을 추하게 그린 화공 모연수를 즉시 참수했습니다.  


왕소군은 추운 북방으로 떠나야 했기에 추위를 이기기 위한 두터운 옷을 입고, 말위에 올라 장안성을 떠나면서 비파를 켰는데, 그 곡이 너무나 애절하고, 그녀의 미모가 너무나 뛰어나서 날아가는 기러기도 놀래 날개짓을 잊고 떨어졌다고 합니다.

왕소군의 미모는 날아가는 기러기도 떨어뜨렸다 하여 그 이후 미녀를 '낙안(落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로 유명한 시는 후대의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의 슬픈 운명과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하는 시를 지어 알려진 말입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이 온 것 같지 않구나

자연의대완(自然衣帶緩)  

저절로 허리띠가 느슨해지는 것은

비시위요신(非是爲腰身)  

가는 허리 때문만은 아니라네


이 시 한 수로 왕소군도,  동방규도 그 이름을 높이게 됩니다.


왕소군은 황제의 명으로 한나라를 떠나 흉노의 왕비가 됩니다. 이렇게 시작은 불행했지만 왕소군은 흉노에서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받았다고 합니다. 중국 4대 미인 중 불행하지 않게 일생을 마친 유일한 여인이죠.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붉은 옷을  입고 호피에 앉아 비파를 든 미인도를 흔히 볼 겁니다. 이 미인도가 바로 왕소군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국에서는 미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곳보다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 4대 미녀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서시의 미모에 놀라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고, 소군의 미모는 기러기가 날개짓을 하는 걸 잊어 하늘에서 떨어지고,  초선의 미모에 달은 부끄러워 모습을 구름 뒤로 감추며, 양귀비의 미모는 꽃조차 부끄러워 잎으로 꽃을 가린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과장된 표현은, 글자 그대로 미인을 상징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녀는 '침어낙안(沈魚落雁)'이나 폐월수화(閉月羞花)로 표현합니다.


침어서시, 낙안소군, 폐월초선, 수화미녀(양귀비) 이 말은 중국의  4대미녀가 만들어낸  미녀의 상징이죠.  





봄이 왔어도 그 봄을 봄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 만드는 거죠.


후궁중 아무도 가기를 원하지 않던 흉노로 갔던 왕소군이 흉노와 한나라의 평화를 만들고, 그곳에서 왕과 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독차지한 것도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빛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일과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잠시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당신의 봄'은 왕소군처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때 만들어집니다.  


새 봄이 희망을 당신에게 만드는 봄이기를 바랍니다.






추신:



봄 이야기를 하였으니, 선비들이 좋아하던  봄시 하나 소개합니다.




봄밤(春宵 춘소)


                                           소동파



春宵一刻値千金 (춘소일각치천금)   

봄밤의 한때는 천금에 값하나니
花有淸香月有陰 (화유청향월유음)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

歌管樓臺聲細細 (가관누대성세세)   

노래소리 피리소리 울리던 누대는 고요하고
鞦韆院落夜沈沈 (추천원락야침침)   

그네 뛰던 뒤뜰은 밤이 깊어 가네

매거진의 이전글 '찬란한 슬픔의 봄'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