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당신을 향해 지금 먼 길을 오고 있습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옆에는 '가을'이라는 오래된 카페가 있습니다.
이 카페는 피아노도 있어서 저녁에는 손님 중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카페는 이런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문화계 인사는 물론 청와대 직원들도 꽤 오갔던 곳입니다.
제가 이 카페를 기억하는 것은 이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꽤 오래전, 신문사와 출판사에 있던 선배 두 명이 단골손님이어서 이 카페에서 만날 때, 여주인과 동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카페는 손님이 많아 '가을'이외에도 , '여름'과 '겨울'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차례로 그 옆에 냈습니다.
춘하추동-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가을'로 시작된 이 카페에 유독 '봄'만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미모의 여주인에게 뻔한 질문을 했습니다.
"왜 봄은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 그건 아직 제게 봄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세종회관 옆에 '봄'이라는 카페가 생긴 걸 보고, 그녀에게 사랑이 왔음을 알았습니다.
봄은 이렇게 갑자기 오나 봅니다.
우리말에서 '봄'이라는 말처럼 정겹고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요?
봄날, 봄비, 봄 아지랑이, 봄나비, 봄나물, 봄밤, 봄하늘, 봄바다, 봄바람, 봄동산, 봄나들이, 봄노래, 봄 잔치, 봄놀이, 봄처녀,봄맞이... 이렇게 ‘봄’이 붙는 말엔 봄의 향기가 묻어나고, 새로움과 희망이 번져갑니다.
소설가 김유정은 '봄봄'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너무 생동감이 넘치는 제목이죠.
어디 이뿐인가요.
소설가 전영택은 아호를 '늘봄'이라고 했습니다.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아호는 '늦봄'입니다.
한자를 안 쓰고도 이렇게 좋은 호를 지을 수 있습니다.
늘 봄이든, 늦게 오는 봄이든
이렇게 봄은 희망이고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작가 최명희는 평생을 거쳐 소설, <혼불>을 집필했습니다.
그 소설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생의 봄이 아직 오지 않은 분들에게 주고 싶은 말입니다.
" 인연은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도 다른데로 가려해도 달아날 수 없고 잉. 지금 너 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 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
지금 먼 길을 오고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그 여유를 가지세요.
그래야 영랑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