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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Oct 16. 2015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가을마당은 낙엽이라도 날려야 가을답지 않겠느냐

새벽은  제가 좋아하는 우리말입니다.


새벽은 아직 동이 트기 전, 잠든 만물이 깨어나기 전의 시간입니다.

한자로 비슷한 말이 있다면 '여명(黎明)', 신명(晨明), 효천(曉天)입니다.

여명은 어둑새벽을 말합니다.


날이 채 밝지 않는 미명(未明)과 빛이 없는 무명(無明)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자의  고뇌와 아픔,  아침에 대한 준비가 새벽이라는 말에는 담겨있는 것입니다.

어둠은 모든 것을 덮고 모든 것을 잊게 하고 모든 것을 보이지 않게 합니다.


우리 겨레는 원래 새벽과 친숙한 민족입니다. 조선(朝鮮)이란 이름 자체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 곧 새벽의 고요함을 담은 이름이고,  옛날 여인네들은 바라는 소원이 있으면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했습니다.


새벽은 감추는 어둠과 밝히는 아침의 경계에 있는 시간입니다.

뒤로 갈 수도 앞으로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김지하 시인은 새벽이라는 말을 더 신선하게 하기 위해 첫새벽이라는 뜻으로  '신새벽'이라는 말을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에서 썼습니다.


일본의 노무라 마사키는 〈아침, 출근 전 90분의 기적〉이란 책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이른 아침의 한 시간은 저녁의 세 시간에 해당하는 능력을 사람에게 선물한다고 했습니다. 그 새벽을 잘 활용한 분은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입니다.  심지어 운전기사들이 힘들어 쓰러질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성경의 시편(108:2)에 있는 말입니다.

함께 차 한잔 하는 마음으로 새벽편지를  보냅니다.






새벽 하면 생각나는 분은 원효대사입니다.

원효(元曉)는 스스로 지은 법명입니다. 으뜸 원, 새벽 효... ' 세상의 큰 새벽'이라는 뜻이며

사람들의 잠든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 가던 중 산에서 자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해골에 담긴 물임을 아침에 알고는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야사에는 원효가 동굴에서 정진하던 중 제갈공명의 혼령이 나타나 "세상에 다시  돌아와 할 일이 있다"라고 애원합니다.  그래서 원효는  잠시 파계하여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는데, 그래서 태어난 인물이 설총입니다.

설총은 훗날 원효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원효대사를 찾아 절로 갑니다.


 깊어가는 가을날, 절에는 낙엽이 흩날리고 원효대사는 수도에 정진 중이었습니다.

원효대사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설총은 낙엽이 흩날리는 절의 마당을 빗자루로 깨끗이 씁니다.

문득 느낌이 이상해 돌아보니 원효대사가 서 있었습니다.


원효대사는 아무 말없이 설총이 모아놓은 낙엽더미에서 낙엽을 한 무더기 꺼내 다시 마당에 뿌리며 한마디 합니다.  

         

"그래도 가을마당에는 낙엽이 뒹굴어야 가을답지 않겠느냐?"


거기에서 큰 깨달음을 설총은 얻습니다.


빈자리를 남겨두어야 사람이든 지식이든 행운이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채워놓고 닫아두면 그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지금 당신에게 빈자리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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