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렇게 바쁘십니까?
정말 그렇게 바쁘십니까?
사방에서 울려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를 들으면 마치 당장 부인이 애를 낳거나, 사경을 헤매는 응급환자라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지 못하다 보니,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자기 성질대로 분노를 터트려 사소한 마찰이 심지어 살인으로 비화되는 '분노의 폭발 시대'가 되었습니다.
빌딩은 더 높아지고, 가진 것은 더 많아지고 학력은 더 높아졌는데도 왜 사람들에게는 예전보다 더 여유가 없어졌을까요?
조금 늦게 간다고 인생에 뒤지는 것도 아니고 경쟁에 뒤쳐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자기만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보하는 것은 절대 손해 보는 게 아닙니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종신양로불왕백보(終身讓路不枉百步)
"평생동안 길을 양보해도 그 양보는 백 걸음이 되지 않는다. "
외길에서 양보를 평생토록 해도 그 양보는 고작 백 걸음이 되지 않습니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산양은 뒷걸음질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가면 두 산양은 모두 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산양은 이럴 때 한쪽은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다른 쪽은 뛰어넘어 외나무 다리를 건넙니다. 이렇게 사람은 동물에게서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웁니다.
유럽에서는 경적을 울리면 무슨 일이 생겼나 지나가는 차가 모두 쳐다봅니다.
일본에서는 경적을 잘못 울렸다가는 야쿠샤한테
칼이나 총으로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와 압축성장이 낳은 폐해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길은 빨리 가는 속도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야 할 그 방향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정말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원칙과 소신이지
사소한 이익이나 길 양보가 아닙니다.
프로이드는 "원칙을 말에서 양보하면 결국은 본질까지 물러서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지켜야 할 것과 양보할 것을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오늘은 좀 여유를 가지며 양보하는 덕을 가져 보시지요.
물러서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요, 그 너그러움은 사람을 대접하는 복이기도 합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조금 여유를 가져 보시죠.
자신과 세상이 새롭게 보이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