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골죽과 석상오동이 왜 최고의 재료가 되었나?
사람은 누구나 일부러 고난을 맞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사람을 그냥 편하게만 놔두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어느 날 편안한 인생에 갑자기 벼락 치듯 파도도 오고 폭우도 쏟아지는 거죠.
그 고난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겁니다.
고난이 자신도 돌아보게 하고, 진정한 친구도 알게 하고, 인생의 깊은 맛도 알게 하는 거죠.
노력이나 내공이 부족하면 그 파도에 휩쓸려가기도 하고 재수없는 사람은 익사도 하게 됩니다.
사람은 인생에서 고난의 과정을 겪으며, 겸손도 배우고 자신의 삶을 다시 정립하게도 되는 겁니다.
사람은 실패 속에서 배우고, 고난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겁니다.
'실패학'의 본질입니다.
작은 성공에 취하거나 자만한 사람은 갑작스런 파도에 그냥 무너집니다.
크고 작은 실패를 몇 번 경험한 사람은 큰 파도에도 오히려 살아남습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나무도 그렇습니다.
대금은 신라에서부터 내려온 오래된 악기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과 김유신이 죽은 후 왕은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고, 김유신은 신선이 되어 대나무를 보냈습니다. 이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萬波息笛' 을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성난 파도와 바람도 잠재운다 했습니다.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없앤다는 전설적인 악기죠.
이 만파식적이 바로 대금입니다.
대금은 대나무로 만드는데, 최고의 재료는 쌍골죽雙骨竹입니다.
쌍골죽은 양쪽에 골이 패였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지요. 보통의 대나무와는 달리 속살이 두텁고 단단해 대금으로 만들면 음색도 깊고 맑고 장쾌하고 청아합니다. 구하기 힘든 만큼 가격도 엄청나죠.
그런데 이 쌍골죽은 사실 '병든 대나무' 즉 병죽病竹입니다.
다른 대나무들이 모두 위로 곧게 자랄 때, 구부러지고 속으로 병들며 자라는, 아픔을 안고 자라는 대나무가 바로 쌍골죽입니다. 외형적으로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속만 두텁고 단단하게 채워가는 것이지요. 이 병죽은 고작 만 개 중 한 개 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심마니들이 산삼을 찾듯이 이 병죽을 찾아다닙니다. 가까이서는 잘 보이지도 않아 사람들은 멀리서 대죽 옆에 있는 우그러진 대나무를 찾는다고 하죠. 쌍골죽은 대부분 똑바로 자라지 못해 휘어져 있기 때문에, 불로 달궈서 펴야 합니다. 속이 단단하게 찬 휘어있는 대나무를 똑바로 펴야 하니 대나무도 힘들고, 만드는 사람도 더 힘이 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쌍골죽은 최고의 대금이 되는 겁니다.
대금(大笒)은 그 깊은 소리로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악기입니다.
대금이 내는 아름다운 떨림의 소리를 요성(搖聲)이라고 합니다.
가야금의 농현(弄絃)과 같은 의미죠.
한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한을 넘어선 소리,
대금은 바로 자신의 상처를 넘어서며 그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를 내는 겁니다.
상처가 있었기에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고, 병들어서 그 고통을 넘어섰기에 오히려 사랑받게 된 겁니다.
최고의 대금 재료가 쌍골죽이라면, 거문고와 가야금 재료로 최고는 '석상오동石上梧桐'입니다.
돌 틈에서 자라다 말라죽은 오동나무입니다.
최고의 재료가 비옥한 땅에서 편안하게 잘 자란 오동나무가 아니라,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그 힘든 환경을 이겨내며 자란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겁니다.
석상오동은 바위 위에서 자랐기에, 이곳은 물도 양분도 적습니다. 이 고난은 생존을 위해 오동나무 스스로 자신의 내부를 더 촘촘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듭니다. 고난이 석상오동을 최고의 재료로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나무들보다 깊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됩니다.
장인들은 이 석상오동의 재료를 베어낸 뒤에도 다시 5년 동안을 바람과 서리를 맞힙니다. 5년의 풍상 속에서 나무를 말린 뒤에야 비로소 거문고와 가야금의 재료로 쓰는 것이죠. 그래야 온도 등 바깥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죠. 사람도 악기도 결국은 들어가야할 시간과 노력이 다 들어가야 제대로 된 자기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겁니다.
석상오동이나 쌍골죽이나 모두 불행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나무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고독과 아픔에 물들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렸기에, 마침내 자신만이 갖는 깊고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을 잊고, 넘어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경계지요.
시련 속에서 아프기도 했고, 상처를 견디어 낸 대나무와 오동이 만들어 낸 울림이기에, 그 소리는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겁니다.
어디 나무 뿐입니까?
진주는 조개에 난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면서 생긴 보석이고, 우황은 소의 담낭에 난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면서 생긴 귀한 약재입니다. 상처와 고난은 이렇게 전혀 다른 자신을 만들어 냅니다.
나무와 조개, 소들도 견디어 낸 시련입니다.
만물의 최고라는 사람이 어찌 못 견디겠습니까?
당신에게 다가온 오늘의 고난은, 쌍골죽과 석상오동처럼 당신을 더 깊고 단단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는 자신만의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아름다운 울림을 낼 최고의 악기가 될 것입니다.
하늘은 고난과 시련을 유독 당신에게만 크게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운명입니다. 당신에게만 주는 행복한 운명입니다.
고난을 넘어선 당신은 이미 최고입니다.
새로운 당신을 스스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