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순훈 May 04. 2016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1

먼저 간 아내를 애도하는 ‘도망시悼亡詩'...  남은 자의 고독과 애절

     

인생길에서 겪는 가장 큰 세 가지 고난은 초년성공, 중년상처, 노년빈곤입니다.


이처럼 아내를 먼저 보낸 아픔은 ‘인생삼난(人生三難)’중의 하나입니다.    

아내를 잃는 것, 그것도 중년에 잃는 것은 인생의 큰 고난이라 할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양귀비는 그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 고개 숙이게 한다는 ‘수화羞花’라는 말을 낳았던 미인입니다.

당 현종은 미모에 반해 며느리가 될 여자, 양귀비를 취해 옆에 두게 됩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하지만 황제도 양귀비를 끝까지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황제가 양귀비에 취해 나라를 돌보지 않게 되자 간신이 날뛰어 민생은 파탄이 납니다. 결국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고,  황제는 피난길에 오릅니다.  이 와중에 양귀비는 나라를 어지럽힌 죄로 죽게 됩니다.     


여자에게는 사랑이 전부였던 시대-

백거이는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을 시로 만듭니다.

이 시가 바로 그 유명한 ‘장한가(長恨歌)’입니다. 긴 한을 남긴 노래라고나 할까요.          



하늘을 나는 새가 되거든 비익조가 되고,

在天願作比翼鳥

땅의 나무가 되거든 연리지가 되자고 했지요.

在地願爲連理枝

천지는 유구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天長地久有時盡

이 슬픈 사랑의 한은 끊일 때가 없으리.

此恨綿綿無絶期


암수가 합쳐져야 나는 '비익조'


‘비익조比翼鳥’는  날개와 눈이 하나밖에 없어 암수가 함께 날아야 날 수 있는 새입니다. 황하 서쪽 숭오산에 사는 물오리와 같은 모양인데 청적색으로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꼭 한 쌍이 합쳐야 날 수 있는데, 사람의 눈에 띄면 천하에 큰 홍수가 난다고 했습니다.      


‘연리지連理枝’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나뭇가지가 맞닿으며 결이 통하여 하나로 된 가지입니다. 춘추시대 진나라의 조간자趙簡子라는 사람이 아전의 딸을 소실로 데려오자 그의 아내가 자결을 했는데, 훗날 그 부부의 무덤이 따로 있었으나, 두 무덤에서 나무가 나고 가지가 서로를 향해 뻗어가더니 하나로 합쳐졌다고 하여 생긴 말입니다.       


두개의 나무가 통한 '연리지'


백거이가 말하는 ‘비익조’와 ‘연리지’는 모두 사랑의 징표이자, 부부를 의미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자가 남편을 잃고 지은 시를 ‘망부가亡夫歌’라고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간절한 사랑을 '사부곡思夫曲'이라고도 하지요.


남편이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그 애절한 마음을 시로 지은 것을 ‘도망시悼亡詩라고 합니다.     


짝을 잃은 애절함에 남녀가 어찌 다를까요, 가부장의 시대이기에 그런 언어의 차이를 낳은 겁니다.      

‘도망悼亡’은 죽은 사람을 애도한다는 뜻이지만,  본뜻은 ‘애도망처哀悼亡妻’ 죽은 아내를 애도하고 슬퍼한다는 뜻이 줄어든 거지요.     


‘도망시’를 처음 지은 사람은 서진의 반악입니다.      


북풍이 싸늘하게 이어서 불어오니, 비로소 이불이 여름 홑 것임을 아네.

凜凜凉風升 始覺夏衾單

어찌 솜이불이 없다 하랴만, 누구와 이 추운 겨울을 지낼까.

豈曰無重纊 誰與同歲寒

찬 겨울을 함께 할 그대가 없으니, 달이 어찌 더 밝아지겠는가.

歲寒無與同 朗月何朧朧

엎치락뒤치락하며 자는 자리 문득 보니, 긴 자리에는 결국 빈 침상뿐이네.

輾轉眄枕席 長簟竟牀空



아내가 없는 빈 침상에는 먼지가 쌓이고, 방은 비어 쓸쓸한 바람만 일어납니다.

그대 모습과 비슷해 옷깃을 만지며 장탄식하니,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가슴을 적십니다.      

가슴 적시는 그 눈물 어이 멈추리, 슬픈 회포가 억장에서 이는 것을.      


잠을 깨면 그대 모습 아직도 눈 앞에 있고 당신의 그 은은한 목소리 아직도 귀에 들리네요.

아, 부끄럽구나. 시로써 내 이 뜻을 말하려 하나 생각이 말라 더 잇지를 못하네.     


반악은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정이 절절한 시를 지었습니다.     


소동파가 아내를 그리워하는 도망시도  애잔합니다.     


슬프구나, 저 물가는 십 리에 봄인데

한 차례 꽃 지자 또다시 꽃 피네

저녁노을 속 작은 누각은 예와 같건만

그 당시 춤추던 사람 보이질 않네.

          

도망시는 유교로 쌓인 단단한 울타리를 허무는 모습을 보이게 합니다. 허균의 스승 손곡蓀谷 이달(李達)도 아내를 잃고 ‘도망시’를 지었습니다.      


비단옷엔 향기 사라지고 거울엔 먼지 앉았네.

羅幃香盡鏡生塵

문 닫자 복숭아꽃 적막한 봄일세.

門掩桃花寂寞春

옛날처럼 그대 방엔 밝은 달빛 와 있는데

依舊小樓明月在

드리운 저 주렴 걷어 올리던 이는 누구였던가?   

不知誰是捲簾人

 

   

사제 간에는 운명까지도 닮는가요, 스승에 이어 제자인 허균도 아내를 잃고 도망시를 짓게 됩니다.     

허균의 아내는 현숙하였습니다.

 

허균의 재능을 믿어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거나 공부를 게을리할 때마다 그를 다그칩니다.      

“게으름 부리시면 제 부인첩이 그만큼 늦어집니다.”      

‘부인첩’은 남편이 큰 벼슬을 할 때 나라에서 고생하며 내조한 부인에게 주는 첩지입니다. 여인의 성공을 나라에서 인정하고 그 부덕을 기리는 공식 인증서인 셈이지요.      


허균은 임진왜란 당시 자신을 그냥 두고 가라는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시어머니와 피난을 가다 아내가 아들을 출산하지만 그 산독으로 아내를 잃습니다. 전쟁통에 젖이 없는 아들도 곧 아내를 뒤따라 갑니다.       


소중한 아내와 아들을 다 잃고 맙니다. 그로부터 18년 후, 당상관이 된 허균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제문을 쓰게 됩니다.  그는 ‘숙부인 김씨 행장’을 적으며 몇 번이고 애통해합니다


.


오직 부인은 본성이 공경스럽고 정성스러웠고

惟靈性惟恭恪

그 덕은 그윽하고 고요하였네 德則幽閑


일찍이 시어머니 섬길 때 早事先姑

시어머니 마음은 몹시도 기뻤다네 姑志甚驩

죽어서도 시어머니 따라 死而從姑

이 산에 와 묻히는구려 來窆玆山

    

휑덩그레한 들판 안개는 퍼졌는데 荒野煙蔓

달빛은 쓸쓸하고 서리도 차구려 月苦霜寒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혼은 孑孑孤魂

홑 그림자 얼마나 슬프리까? 悲影之單

    

십팔 년을 지나서 踰十八年

남편 귀히 되어 높은 벼슬에 오르니 夫貴陞班

은총으로 추봉하라는 恩賁追封

조서가 내려졌네  紫誥回鸞


어려울 때 가난을 함께 하면서 賤時共貧

나의 벼슬 높기를 빌더니만 祈我高官

벼슬하자 그댄 이미 죽어 없으니 及官已歿

추봉의 은총만 부질없이 내려졌네 寵命徒頒


어찌하면 영화를 같이 누릴꼬 焉得同榮

내 마음 하염없어라 我懷漫漫


아마도 그대 넋이 알게 된다면 想魂有志

그대 또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리 其亦汍瀾

    

부인, 나라에서 녹으로 내린 술 한 잔 드시구려

 一酌官醪

 서러운 마음에 눈물만 줄줄 흐르네

悲來涕潸

         


조선 최고의 문장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허균.

젊은 시절 자신의 재주만 믿고 공부는 뒷전인 채 꾀도 부리고, 술도 꽤 마시러 다닌 모양이지요. 이럴 때마다 갓 시집 온 아내는 '군자의 처신' '세월은 빠르니' 운운하며 훈계했습니다.

 

'내 부인첩이 늦어진다'며 어르기도 했습니다.  

득남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출산 이틀 만에 아내는 산독으로 객사합니다. 아내의 시신을 염하고 묻으려니 체온이 느껴져 차마 바로 묻지 못했습니다. 조강지처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4백여 년 전의 허균의 그 애절함이 지금도 느껴집니다.


허균은 출세하고, 아내가 그토록 바라던 대로 부인첩도 받아 듭니다. 그러나 그 아내는 이젠 곁에 없습니다. ‘이 영화가 과연 누구의 덕일까’, ‘가난할 때 나의 벼슬이 높아지길 그렇게 빌었던 사람이 누구였나’.


아내를 잃은 그 애절한 마음을 누가 알며,  그 그리운 마음은 어떻게 하늘로 전해지겠는가.

그처럼 고생했던,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기에 허균은 그 허망함 때문에 조선의 변혁을 위해 온몸을 던졌는지도 모릅니다.  


‘도망시’는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최고의 헌사입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표현하지 못했던 유교의 감옥에 갇혔던 남자들의 진정한 마음입니다.     

아내를 잃고 난 뒤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늘은 어찌하여 저리도 푸르단 말인가?”


할 일은 많지만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던 제갈량의 탄식입니다.     

그 마음은 아내를 잃고 홀로 남은 남자의 허망한 마음과도 같을 겁니다.


오늘은 마무리로, 아내를 잃은 후 지은 현대판 ‘도망시’를 소개합니다.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도종환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 비록 개울처럼 어우러져 흐르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우리 비록 돌처럼 여기저기 버려져

         말없이 살고 있어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추신:


오늘 편지의 제목,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는 고려가요 '가시리'의 한 대목으로  

"나에게  어찌 살라 하고..."의 뜻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날은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