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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May 09. 2016

"이 비석을 깨는 자, 화를 입으리라!"

이문건의 한글비석 …… 효심(孝心)이 지킨 5백 년

효심으로 지켜진 5백년이 된 산소가 있습니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지킬 수 없었지만, 효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겁니다.


“이 비석은 신령한 비석이다

비석을 깨트리는 사람은

화를 당하리라.

      

부모를 위해 이 비석을 세우노니,

부모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 비석을 훼손할 것인가

비를 차마 깨지 못하리니

묘도 감히 훼손할 수 없을 것이다.

후 만대까지 보존되리라. “  

        


조선 중기,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은 태릉에 있던 아버님의 산소가 문정왕후의 왕릉구역으로 정해지자, 서울 하계동으로 산소를 이장하면서 이 비석을 세웁니다.     


아버지의 안식을 방해한, '이장의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않은 소망이 담긴 겁니다.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 비석을 훼손할까 봐 한글로도 써 놓았습니다. 그래서 한글비석이나 한글고비라고도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이윤탁(李允濯) 한글 영비(靈碑)’입니다. 이윤탁은 이문건의 선친입니다. 효심으로 세운 비석은 아들과 아버지의 이름을 이렇게 영원히 남겼습니다.      


우측에는 ‘불인비(不忍碑)’, “차마 어떻게 할 수 없는 비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좌측에는 “신령스러운 비석”이라는 뜻의 ‘영비(靈碑)’라 새겨져 있습니다.     


국내 수많은 조선시대 비석 가운데 한글로 쓰인 희귀한 작품이기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길 이름도 ‘한글비석로’가 되었습니다.      


이문건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습니다.     

곧은 성정으로 타협 없는 개혁을 하려던 조광조의 뜻이 꺾인 후, 그의 죽음에 자신도 화를 당할까 봐 감히 조문도 가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이문건은 문하생 한 명과 당당히 조문한 당찬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집안도 결국은 풍파가 닥칩니다. 형제도 죽고 조카도 죽고 딸까지도 죽습니다. 그는 우승지까지 취소당하고 유배를 당하자, 거기서 손자를 기르는 육아일기, <양아록 養兒錄>을 쓰기도 합니다.      



<양아록>은 약 500년 전 조선 양반가에서 아이를 기르는 모습과 생활상을 상세히 기록해 당시 양반의 교유관계, 관직생활, 유배생활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지금도 남자가 쓰는 육아일기가 드문데, 이문건이 쓴 ‘양아록’은 선비가 쓴 육아일기입니다.    


이문건은 주역에 밝아, 자신의 후대 10대 손의 족보를 직접 예견해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앞으로 출생할 후손들의 이름을 다 기록해 놓았고, 어려서 죽을 후손들의 이름에는 동그라미를 쳐 더 놀랍게 했지요.          

그러나 효심으로 세운  비석이 더 대단하지요.     

유배로 일생을 마쳐야 했던 그로서는 묘비명을 통해서라도 부모의 무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비석은 아무도 안 건드리고 잘 지켜져 왔습니다.      

도로확장 때문에 당초의 자리에서 뒤로 조금 옮겨야 할 때는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일하는 공사 관계자와 설계사, 건설회사, 공무원들도 혹시 화를 당할까 봐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문중에서 정중히 예를 갖춘 제사를 지낸 후에야 아무 일 없이 옮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비석은 역사적 의미까지 더해져 보물까지 되었으니 안전하게 오래오래 지켜질 겁니다.



부모님 죽은 후의 효성이 아무리 지극해도 생전의 작은 효도만은 못합니다.       


이문건은 7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늙어서는 어머니를 위해 거문고를 배웠습니다. 부모의 묘비에 효를 새긴 선비였습니다. 


어버이날, 

돌이켜보니 제가 한 일이라고는 불효밖에 없기에 쓰는 편지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부모님 계실 때 잘하십시오.     




추신:


가난한 세월, 그만큼 뜨겁고 진한 사랑을 주었던 우리들의 부모님들께 이 노래를 바칩니다.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  한통만 사면
온동네가  곱던 어머니
지금은 잊혀진 추억의 이름
어머님의 동동구루무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가는 밤이면
내 언손을 호호 불면서
눈시울 적시며 서러웠던 어머니
아아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 아끼시다가
다못쓰고 가신 어머니
가난한 세월이 너무 서럽던
추억의 동동구루무
달빛이 처마끝에 울고가는 밤이면
내 두빰을 호호불면서
눈시울 적시며 울먹이던 어머니
아아 동동구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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