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거울이 된 광화문 글판을 돌아본다
2014년 4월 13일.
학생들이 바다에서 죽었습니다.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해서. 그것도 304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전국이 모든 행사를 중지했습니다. 몇달동안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교보생명의 광화문 글판이 소리 없이 걸렸습니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 시인의 시였습니다.
보고 싶은 아이들, 그리운 마음, 안타까운 사연들...
선주와 선장의 패덕, 해경의 무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무능, 자책, 죄책감,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
사람들은 이 글 한 줄에서 공감했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요즘처럼 장학제도가 많이 없었을 때, 교보의 교육보험은 이 나라의 많은 학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저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교육보험을 들었으니까요.
교보생명의 창립자, 신용호 선생은 교보를 만들어 학자금을 주는 교육사업 말고도 두 가지 큰 일을 했습니다.
하나는 가장 비싼 땅 광화문에 돈을 적게 벌지만 의미있는 일, 큰 서점 '교보문고'를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광화문 글판'을 만든 것입니다.
돈을 멋지게 쓰는 방법을 이렇게 보여준 사람도 드물 겁니다.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근래 중국에서 만든 말 가운데 '유상(儒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비정신을 지닌 사업가라는 뜻이죠. 일제시대 전답을 팔아서 우리 문화재를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이나 신용호 선생이 바로 유상입니다.
1991년부터 시작된 광화문 글판은 처음에는 교보생명의 이름과 직설적인 교훈이 담긴 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IMF는 우리 사회를 절망과 비탄으로 휩쓸었지요. 신용호 선생의 지시로, 이때부터 교보는 이름까지 빼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글판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교보는 지난해 '내 마음을 울리는 광화문 글판은?'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투표를 했습니다. 그 투표 순위입니다. 25년간 광화문 글판에 걸려 사랑과 희망을 준 글, '베스트 10'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나태주(2012 봄), 1위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문객/정현종(2011 여름), 2위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대추 한 알/장석주(2009 가을), 3위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풍경 달다/정호승(2014 여름), 4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2004 봄), 5위
있잖아,
힘들다고 한숨 짓지마.
햇살과 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약해지지 마/시바타 도요(2011 가을), 6위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
-해는 기울고/김규동(2005 여름), 7위
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마흔 번째 봄/함민복(2015 봄), 8위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고은(2000 봄), 9위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휘파람 부는 사람/메리 올리버(2015 가을) , 10위
1998년 봄, 고은 시인의
" 떠나라 낯선 곳으로 /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 가 광화문에 걸렸습니다.
교보의 글판에서 시민의 글판으로 바뀐 겁니다. 이때부터 30자 이내의 이 글귀들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위로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시인의 허락을 얻어 시를 줄이기도 했으니까요.
광화문 글판에 대한 사람들의 평입니다.
"서울의 푸른 하늘, 메마른 일상을 적시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시인 김용택
"머리에 기억시키는 곳이 아닌 가슴에 다가가는 공간" -시인 도종환
"시로 된 멋진 글판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산케이신문
"가슴 뭉클한 글들은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거리의 명물" -조선일보
"서울을 찾는 외국 시인과 작가들이 놀란다. 바로 문화의 힘" -한국일보
"글귀를 읽을 때마다 힘이 나고 새로운 용기를 얻는다" -김은선
"도시의 삭막함 속에 있는 따뜻함과 인간미, 따뜻한 빛깔로 도시는 행복하다" -전현중
광화문 글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 글귀를 만들고 선정하기 위해 생긴 '문안 선정위원회'에서 30자 이내의 글을 추천하고, 교보 임직원과 전국 통신원들의 지지가 많은 글귀로 선정하게 됩니다. 위원회는 교수, 문학평론가, 언론인, 소설가, 시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광화문 글귀도 저절로 탄생되지 않고, 이들의 고심과 노력 끝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고생했던 위원들은 유재천(교수), 유종호(평론가), 이광훈(경향신문), 이청준(소설가), 고종석(한국일보), 정호승(시인), 최동호(평론가), 공선옥(소설가), 김광일(조선일보), 장영희(교수), 최승호(시인), 노재현(중앙일보), 은희경(소설가), 이지희(카피라이터) 씨 등입니다.
이렇게 선정된 글귀는 6명에서 10명의 디자이너에게 전해집니다. 이들은 2,3주 동안 한 글자, 한 글자를 생각하며 전투처럼 디자인에 매달립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예술가의 협조를 얻거나 직접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광화문 글판의 무게와 의미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30종의 시안은 하나하나 걸러지며 최종 한 작품으로 낙점됩니다.
광화문 글판은 가로 20미터, 세로가 8미터. 신문지 8백 배나 되는 엄청난 크기입니다. 글씨 크기가 초등학생 키와 맞먹는다고 하지요.
교보문고는 광화문 글판의 글귀를 모아 책으로 냈는데, 복기왕 아산시장은 이 책이 가장 감명깊었 다고 말합니다.
메마른 도시의 샘물, 광화문 글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수고와 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광화문 글판을 만드신 이 분들 덕에 우리는 지친 삶 가운데서도 사람사는 사회의 따뜻함, 인간에 대한 사랑, 용기와 희망, 그리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많은 이들을 대신하여 이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국회의원 10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고 맙 습 니 다.
정 말 고 맙 습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