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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Oct 28. 2015

운명을 바꾼다는 것1

나는 내 운명...흙수저 운명을 어떻게 금수저로 바꿀 수 있는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청록파 시인으로, 오늘날에도 선비로 존경받는 조지훈 선생은 <지조론>을 썼고 그의 뜻이나  삶도 그러했다. 앎과 삶이 일치했기에 지금도 존경을 받는 것이다. 선생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평생 세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빌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선생이 말하는 남에게 빌려서는 안 되는 세 가지는 돈과 글, 자식이다. 남에게 세가지를 빌리지 않고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삼불차(三不借)'의  이 교훈은 지금 '조씨 가문'의 가훈으로 전해진다. <지조론>을 쓴 선생답다.


선비가 되는 길도, 선비로 가는 길도 이렇게 어렵다.


금수저를 물고 나오지 않은 이상 어찌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며, 돈을 빌리지 않고  어찌 사업과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적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명리를 떠나 자신의 품위를 초연히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선생의 생가가 있는  영양은 고추의 주산지다. 그래서 청송과 영양고추는  '청양고추'로 유명한데  그래서일까 이재오 의원과 작가 이문열 등 고추처럼 당찬 인물들이 이 지역에서는 배출되었다.


전통적으로 하늘이 내게 준 운명을 자신이 전환시키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적덕(積德)을 하는 일이다. 주변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선을 쌓는다 하여 '적선(積善)'이라고도 한다.


둘째는 스스로 자신을 밝히고 맑게 하는 일이다. 선(禪)을 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명상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명당에 조상의 묘를 쓰는 일이다. 천지의 기운을 모아 하늘의 운을 받는 일이다.


넷째는 독서를 많이 하는 일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사람은 자신이 읽은 것만큼 세상을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세계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운명을 바꾸는 이 네 가지는 그동안 비밀이었는데,  남평문씨의 가훈으로 내려온다.

사람의 운명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기가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운명을 바꾸는 것은 자기 수행(기도와 지신)을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귀인을 만나면 된다.

주어진 인생도 조상이 쌓은 덕이다. 내 인생도 빌려서 온 것이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내 힘으로 기를 만들지만 그걸 맺는 것은 다른 사람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래서 인생길은 어렵다. 그래서  가수 유지나는 '고추'라는 노래를 통해 인생을 이렇게 노래했다.       


고개 고개 넘어가도 또 한 고개 남았네
넘어가도 넘어가도
끝이 없는 고갯길
세상 살이가 인생 살이가~
고추보다 맵다 매워
사랑하는 정든 임과 둘이라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두리둥실 두리둥실 살아가련만
세상 살이가 인생 살이가
고추보다 맵다 매워~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삶, 그 운명이 전환되기 전까지는 자신을 닦으며 인내하는 길과 운명을 바꾸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 즉 귀인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참고 기다린다고 운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행운은 돌아다녀야 만난다고 하여,  행운은  머리에 붙어있지 않고 발길에 붙어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세속적이든 정신적이든 자신이 이루려는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진리를 찾는 길', 구도의 길과 비슷하다. 운명을 바꾸는 길이기도 하다. 절에 갔을 때 대웅전 담벼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는 소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소를 찾는다고 하여 '심우도 (尋牛圖)'라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서울 성북동에 말년에 거주하였던 집 이름이 '심우장(尋牛莊)이다.



이 집은 3.1 운동 후 감옥에서 나온 만해가 기거할 곳이 없을 때 조선일보 사장 등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지었는데 총독부가 보기 싫다며 창을 북향으로 낸 보기 드문 북향집이다. 서재로 쓰였던 심우장의 편액은 당시 명필인 위창 오세창(吳世昌)의 글씨다.     


 심우는 ‘소(牛)를 찾는다’는 뜻이다. 심우장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 공부하는 인생을 의미한 것으로 그의 수양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진리를 찾아 나아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심우도'는 원래 도교에서 나온 것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면서 도교와 결합된 것이다. 진리를 찾는 열 단계라고 하여 '십우도(十牛圖)'라고도 불린다. 운명을 바꾸는 것과 진리를 찾는 길은 비슷하다. 운명을 바꾸는 것도 진리를 찾는 길이고 진리를 찾으면 운명도 바뀌는 것이니 이래서 진리는 가까운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리를 찾아가는 길, 심우도(尋牛圖)


1. 자기의 본심인 소를 찾는 것을 '심우(尋牛)'라 한다. 진리를 찾는 첫걸음이다.

2. 진리를 찾는 마음을 갖게 되면 소의 발자취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견적(見跡)'이라 한다.

3. 발자취를 쫓다가 마침내 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견우(見牛)'라 한다.

4. 소를 발견하고 도망치려는 소를 붙잡는데 이를 '득우(得牛)'라 한다.

5. 마침내 소를 붙잡아 같이 지내며 소를 길들이는데 이를 '목우(牧牛)'라 한다.

 6. 소를 타고 무위의 깨달음의 세계인 본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우귀가(騎牛歸家)'라 한다.

7. 이제는 소가 달아날 걱정이 없으므로 소를 잊어버리고 안심하는 것을 망우존인(忘牛存人)이라 한다.

8. 사람이나 소도 본래 비어있는 공(空) 임을 다시 깨닫는데 이를 '인우구망(人牛俱忘)'이라 한다.

9. 깨달았지만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른 그대로의 세계를 여실히 보는 것을 '반본환원(返本還源)'이라 한다.

10. 깨달았기에 고통에 처한 중생을 건지기 위해 거리로 나아가는 것을 '입전수수(入廛垂手)'라 한다.



  




불교에서는 운명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의 운명은 자기가 행했던 일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주는 전세의 삶의 성적표이고 현세는 과거의 인과(因果)가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성북동 비둘기'를 쓴 이산 김광섭은 한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다 내게서 오고
모든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 그 마음먹기와 행동이 운명을 결정하고, 주어진 운명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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