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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Oct 08. 2016

 '백만송이 장미'를 받는 여자

심수봉, 니코 피로스마니, 알라 프카쵸바의 장미에 얽힌 사랑

장미만큼 강렬한 꽃이 있을까?


가시가 있기에 장미는 더 강렬한 느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시가 없는 꽃은 장미가 아니다다는 '장미는 가시가 있다 '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최인훈은 “장미꽃을 빼고서 서양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달을 빼고 이태백을 말하는 것과 같다”했다.      서양철학의 본문이 플라톤이면 장미는 서양문학의 단초인 셈이다.


여성을 의미하는 장미는 그만큼 강렬하다.     

로르카는 “장미는, 장미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고, 릴케는 “장미, 오오 순수한 모순이여!”라고 외쳤다.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연모했던 여인, 루 살로메를 찾았다. 그렇다. 사람들은 그가 파상풍으로 죽었다는 의사의 소견보다는,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더 사랑한다.      



장미는 세상의 여자만큼 꽃말도 많다.     


붉은 장미의 꽃말은 ‘절정, 기쁨, 열렬한 사랑’이다.

하얀 장미의 꽃말은 ‘존경, 순결, 결백, 비밀’이다.

분홍 장미의 꽃말은 ‘사랑의 맹세’, ‘행복한 사랑’이다.      

노란 장미의 꽃말은 ‘질투, 시기, 이별,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주황색 장미의 꽃말은 ‘수줍음, 첫사랑의 고백’이다.

보라색 장미의 꽃말은 이중적이다. ‘영원한 사랑’, ‘불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검은 장미를 보았는가. 그 꽃말은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 ‘슬픈 사랑’이다. 죽음을 던진 사랑으로 느껴진다.     


파란 장미는 예전에는 없었다. 그래서 꽃말은  예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불가능’이었다.      

농업기술의 발달은 파란 장미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그 꽃말은 ‘기적’, ‘천상의 사랑’으로 바뀌었다.      


색깔뿐 아니라, 장미는  송이에 따라서 꽃말이 달라진다.


빨간 장미 봉오리는 '순수한 사랑', '사랑의 고백'이다.      

빨간 장미 한 송이는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야’     

빨간 장미 44송이는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빨간 장미 119송이는 ‘나의 불타는 가슴에 물을 뿌려주세요’ 이다.    


그렇다면 ‘백만송이 장미’는 무슨 의미를 지닐까?      


한국에서 가수 심수봉이 불러 유명해진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은 러시아의 알라 푸가쵸바가 불렀다. 가사는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작사한 것이다. 가난한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여배우에 대해 사랑에 빠졌던 일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여배우가 창문을 열자 그 창문가에는 세상을 덮을 만큼의 장미꽃으로 덮여 있었다. 가난한 화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백만송이 장미로 마음을 전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다른 남자의 이름이 나왔다. 화가는 잔인한 사랑에 절망했다.


가수 심수봉

러시아의 백만송이 가사를 보자.


Жил - был художник один,

Домик имел и холсты.

Но он актрису любил,

Ту, что любила цветы.

Он тогда продал свой дом,

Продал картины и кров

И на все деньги купил

Целое море цветов.

Миллион, миллион, миллион алых роз

Из окна, из окна, из окна видишь ты:

Кто влюблен, кто влюблен, кто влюблен, и всерьез,

Свою жизнь для тебя превратит в цветы!

Утром встанешь у окна:

Может, сошла ты с ума?

Как продолжение сна.

Площадь цветами полна...

Похолодеет душа:

Что за богач тут чудит?

А под окном, чуть дыша,

Бедный художник стоит.

Встреча была и прошла,

В ночь её поезд увёз...

Но в её жизни была

Песня безумная роз.

Прожил художник один,

Много он бед перенёс,

Но в его жизни была

Целая площадь цветов...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를 팔아

그 돈으로 바다도 덮을 만큼 장미꽃을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오


그대가 아침에 깨어나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 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너무 짧았고 밤이 되자 기차가 그녀를 멀리 데려가 버렸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니코 파로스마니 작품

                                                                                                                                                                            

이 가사는 실화다.


어느 가난한 화가가  여배우를 위해,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집도 팔고 그림도 팔고 심지어 피까지 팔아서 바다를 덮고 세상을 덮을 만큼의 백만송이 장미를 샀다.  


러시아 그루지아에 '니코 피로스마니'는 화가가 있었는데 그는 가난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의 작품은 사후에나 알려지게 되었다.


니코 피로스마니의 '여배우 마르가리타'라 작품은 '백만송이 장미'에 나오는 여배우와 관련이 있다.


니코 파로스마니 작품


니코 피로스마니의 작품을 보면 색감이 매우 단조롭다.  물감을 살 돈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원근법도 무시한다. 그래서 원시주의다.


모든  첫사랑은 그렇게 아름답듯이 그림 속의 주인공 마르가리타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지방 삼류 악단의 배우였지만, 그녀는 늘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 가난한 화가의 사랑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니코 피로스마니는 단 한순간도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어느 생일날 아침 느지막이 눈을 뜬 마르가리타가 창문을 열었을 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머물렀던 집 앞 골목에 온갖 꽃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화가의 선물이었다.


그 여배우는 그 화가의 사랑을 받아들였지만, 

가난한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1987년에 발표된 가토 도키코의 '백만송이 장미(百万本の バラ)'는 크게 히트하였지만, 가사의 내용은 러시아어판과 비슷하다.     


1997년 한국에서 발표된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는 제목이 같을 뿐, 화가와 여배우의 사랑을 노래하는 러시아어와 일본어의 가사와는 다른 내용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 현장에 있었기에 가수로서의 재능과 함께 인생길이 굴절되었던  비련의 가수 심수봉은 ‘백만송이 장미’를 자신만의 인생관과 철학으로 해석하고 녹였다.

화가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 자체에 대해 노래하는 아가페의 의미가 담긴 철학적인 가사다.      


가수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는 심수봉 본인이 직접 작사했다.

심수봉 스스로도 자신이 작업한 것 노래 중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때 그 사람’ ‘사랑밖엔 난 몰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불렀던 그녀가 사랑과 실연을 통한 인생의 아픔과 즐거움, 괴로움을 겪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노래다. 그래서 심수봉은 비로소 여자에서 여인이 된 것이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냉정한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를 안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되어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장미 백만송이. 트럭으로 100대 분량이다.

쉽게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꽃이다. 세상은 상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이렇게 자신의 전부를 내던진 무모한 사랑을 하는 사람도 나온다.  

    

백만송이 장미는 인생 전체를 건 사랑이다. 그래서 필자는 백만송이 장미의 그 꽃말은  '내 인생 전체를 그대에게 보낸다'로 생각한다.     


그 장미를 받을 수 있는 여자, 그 사랑을 보내는 남자 모두 행복할 것이다.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여배우와 짧은 사랑으로 이별하였다 해도 그 삶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행복하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시인 노천명은 22살에 세상을 떠난 조카를 보고 '장미 우지끈 꺾이다'라고 했다.

세상에 와서 100만 송이 장미를 보내는 사랑, 장미의 이름은 우리를 열정으로 흔든다.

 

장미, 오오 그 순수한 모순이여!

우리의 순정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다.      


                 

니코 파로스마니 작품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듣기 http://www.youtube.com/watch?v=AbdY2pjd6GY                                        러시아 원곡 백만송이 장미 듣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sjpark&logNo=110165425578&jumpingVid=FE64E236128692AB72867E9408B45C9C6F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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