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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Oct 24. 2016

아부, 마음을 훔치는 마력

김삿갓과 정철도 말 한마디에 인생을 걸었다

아부阿附는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살랑거리는' 아첨과는 다른 말이다. '언덕에 기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듯,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이 말에 의지해서 세상을 사는 게 바로 아부다.

 

신사중의 신사로 꼽히는 사람, <아들아,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의 저자로 유명한 체스터필드에 따르면  여성은 아부가 지나치게 강한지, 지나치게 약한지 신경 쓰지 않는다.      


여자는 아부에 있어서만은 대단한 포식주의자다. 엄청난 아부도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고, 작은 아부는 작은 아부대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현명하다고 추켜세우든 예술에 대해 특별한 안목이 있다고 추켜세우든 모든 여자들은 잘 받아들인다. 여성은 스스로 자신이 그런 아부를 받을 가치와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를 이렇게 간파한다.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반드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두드러지게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라도 우아하다거나 아름답다는 이야기에 넘어간다. 여성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더욱더 빛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미모나 재능을 인정받기를 갈망한다.”      


이 심리가 어디 여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체스터필드가 강조한 상류층 여성들에게 특히 잘 보여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당사자도 모르게 등 뒤에서 그 사람에 대한 평판과 평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리더나 윗사람 부인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공격은 막을 수도 당해낼 수도 없다. 방어가 최선이다. 그녀가 당신에 대해  공격하는 시점이나 공격하는 내용도 전혀 알 수 없으니까 그렇다.


최순실에게 찍힌 남자들은 모두 옷을 벗었다. 현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국민에게 찍힌 최순실은 한국에서 사라졌다.  아부도 정도를 넘으면 주군조차 위태롭게 한다.

      

체스터필드는 아들에게 “사랑보다는 부(富)와 결혼하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돈과 결혼한 사람은 거의 행복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결혼생활을 하는 반면, 사랑으로 결혼한 사람은 얼마간 행복하지만 오랫동안 불편하게 산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그 이유다.

 

여자든 남자든 자신에게 칭찬이나 아부가 오면 상대가 자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제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 즉 호감을 갖게 되고 그것이 좋은 감정 나아가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감성적인 여성이라면 그것이 더 감미롭고 제대로 어필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미스롯데에 당선된 여성을 보자 인사를 온 자리에서 한눈에 반해 결국 그녀와 결혼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여배우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녀들과 몇 번 결혼한 사실은 그가 가진 재산보다도 최소한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잘 다루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거기에 재벌에다 통까지 컸으니 여자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가 한 행동 가운데 남자다운 최고의 매력은 나이가 들자, 사랑했던 미모 아나운서 출신의 장은영 씨를 끝까지 붙잡고 있지 않고 그녀를 그녀의 첫사랑에게 다시 돌려준 결정일 것이다.       


김삿갓은 아내에게는 시 한수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사랑한 명기 가련(可憐)에 대해서는 십 여수의 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 가장 압권은 가련이와 이별하면서 쓴 시 ‘가련’이다. 매 행마다 앞 뒤로 가련의 이름이 댓귀로 나온다. 이런 아부와 마음이 담긴 시를 받으니 여인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可憐門前別可憐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면서

可憐行客尤可憐      
가련한 나그네가 더욱 가련하구나

可憐莫惜可憐去      
가련아, 가련한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마라

可憐不忘歸可憐     
 가련을 잊지 않았다가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관동별곡'을 써,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송강 정철(鄭徹)도 유배지에서 만난 기생 진옥(眞玉)과 첫만남에서 마음을 담아 서로 시조를 주고 받았다. 이 로맨스는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진옥에게 송강이 은근한 마음을 담은 시를 먼저 건네자 진옥이 화답을 한 것이다. 먼저 정철의 시조다.     


옥(玉)이 옥(玉)이라커늘 번옥(燔玉)으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이 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어 꿰뚫어 볼까 하노라.     


이 당시에는 옥이 귀했는데 번옥은 돌가루로 만든 가짜 옥(玉)이다. 이에 강계 제일의 명기, 진옥이 가야금을 타다 그 시를 듣고 답한다.     


철(鐵)이 철(鐵)이라커늘 섭철(攝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어 뇌겨볼까 하노라.      


명문명답-.

문장으로 이름이 높던 천하의 송강도 놀랐다. 자기의 수작이 담긴 시에 대구를 맞춰서 답이 왔기에 그렇다. '섭철'은 가짜 철이며 '풀무'는 바람을 일으키는 풍로다. 살송곳과 골풀무는 모두 남녀의 성기를 의미하는 말이다.


당대  최고의 문사들이 서로의 이름을 매개로 시로 주고 받은 사랑이다.

진옥은 조선 문인의 문집에 정철의 첩으로 유일하게 기록이 된 여인으로 재능이 뛰어났다.      


여자도 남자도 아부의 말을 좋아한다.

아부의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효과적인 것은 ‘당신은 특별한 사람’ 혹은 ‘당신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 말이 표현된 순간,  말은 의미를 갖고 살아난다.


리더가 참모에게 하는 가장 큰 아부는 ‘자네의 능력을 아네’와 ‘자네를 믿는다’는 두 가지 말이다.


여자든 남자든 아부의 말 한마디에 인생을 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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