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돈은 정거장이어야 한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정치인의 운명은 어쩔 수 없이 돈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정치는 한마디로 돈을 쓰는 일이다. 다른 분야는 대개 돈을 버는 일을 하지만 정치는 돈을 쓰는 일을 한다. 그 돈을 얼마나 제대로 쓰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돈은 필수 불가결하다. 정치는 사람이 하지만 그 수단은 결국 돈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인간의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엥겔계수라는 말이 나온다. 독일 통계학자 엥겔이 밝힌 것으로, 식비가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인데 이 비율이 높을수록 생활수준이 낮은 것으로 간주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특권층이라는 정치인의 엥겔계수가 가장 높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직업인지라 밥값이 큰 것이다. 거기에 기자들과 술이라도 먹으면 지출은 더 커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엥겔계수가 낮은 정치인은 희망이나 미래가 없다. 사람 만나는 것을 적게 하는 정치인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미래를 만들다 보니 돈을 만들어야 하고 돈을 만들다 보면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실에는 잘 가는 음식점들이 보통 100군데 넘게 연락처가 있다 큰 모임, 작은 모임, 은밀한 모임까지 다 적절한 장소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의도에는 한식, 중식, 양식까지 고급 음식점들이 꽤 많다. 국회의원부터 증권사, 방송사까지 모두 조용한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특히 기억나는 음식점 중 하나는 국회 앞의 ‘진주 청국장’이라는 음식점이다. 이 식당은 원래 진주시청 앞에 있었으나 장사가 잘돼 경남도청 앞으로 옮겼다가 국회 앞으로 다시 옮겼다. 이 주인은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이 잘 나갈 때는 후원을 전혀 안 했다. 그러다가 그가 낙선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성의껏 후원을 했다. 잘 나갈 때는 사람도 돈도 모여들지만 어려울 때는 사람도 돈도 모두 흩어진다. 그게 세상인심이다.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인은 거꾸로 했다. 그래서 사람이 다시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뇌물사건 때문에 대선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이 아니다. 나라를 협량한 인재, 협량한 생각으로 소통조차 하지 않고 다스렸기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거지와 세무 공무원과 교수와 기자, 경찰이 만나 식당에 갔다.”
누가 밥값을 낼까?
밥값은 예상과 달리 거지가 낸다. 세무서, 교수, 기자, 경찰은 부탁받는데 익숙한 직업이라 밥값을 잘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자리에 국회의원이 함께 있다면 그 밥값은 국회의원이 낸다. 국회의원은 힘이 있지만 또 힘이 없다. 국회의원은 민심을 얻어야 힘을 쓰는 ‘동냥 벼슬’이기 때문이다.
한때 ‘정치인의 능력은 돈을 만드는 것과 비례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정치나 사업의 본질은 남의 닭으로 알을 낳는 것이기에 더 그렇다. 자기 돈만으로 정치를 한다면야 정몽준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 같은 재벌 출신 말고는 몇 명이나 국회의원을 할 수 있을까. 그랬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아마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회의원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자금줄을 묻는 것은 그에게 모든 비밀을 말해달라는 것이기에 직접 듣기는 사실 어렵다. 예전에 야당이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은 야당은 정치자금이 늘 부족했고 가끔씩 ‘정국 협조나 원활한 여야관계 복원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여당으로부터 정치자금이 보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의 청와대에는 방 한쪽 벽을 채우는 금고가 있었고, 국회에서는 유일하게 여당의 원내총무실에도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자금과 여당에 기탁된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커다란 금고가 있었다. 그래야 야당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고 지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금이 들어오는 날 그 냄새를 맡은 기자들에게 입막음을 하려고 촌지를 주고 술을 사주는 일도 있었다.
원내총무는 ‘국회의 꽃’이다. 국회 운영과 정치협상이 모두 원내총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칭이 원내대표로 격상된 원내 제1당인 여당의 원내총무는 국회 운영위원장을 당연직으로 겸직한다. 정치에서 돈 흐름이 줄어들자 돈이 사라진 곳에 협상과 대화가 자리 잡으면 좋은데 대결과 투쟁이 그 자리를 밀고 들어왔다. 그래서 요즘의 정치는 낭만도 없어지고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이해도 적어졌기에 더 삭막하고 살벌해졌다.
계보정치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계보를 운영하는 힘은 돈과 공천권이다. 계보 보스를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금관리가 필요했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한 보스는 계보원의 이탈을 감수해야 했다.
돈의 힘에 대해서는 한 장관의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계속 유임시켜달라고, 한 산하기관장이 성의를 담아 들고 왔는데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안 받았지만, 그냥 돌아서서 가는 뒤통수가 이쁘게 보이더군요. 그만큼 제게 신경을 쓴다는 거 아닙니까? “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뇌물을 쓴 사람은 조선시대 최고 거부 임상옥이다. 그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박종경 이조판서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백지어음’을 부조금으로 냈다. 금액을 알아서 쓰라는 요즘의 백지수표와 같은 것이다. 이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아직까지 없었던 일이다. 그런 통 큰 결단이 특정 상단에 편중된 인삼 교역권을 그에게 일부나마 갖도록 하고, 그것을 계기를 잡아 그는 날개를 달게 된다.
야당에 지속적인 정치자금이 들어오게 된 것은 김대중 총재가 단식으로 얻어낸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부터이다. 지방의원부터 단체장, 광역단체장까지 공천을 얻으려는 인사는 즐비하고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인맥과 돈이 공천의 결정을 좌우했다.
공천경쟁이 치열해지니 공천을 결정할 힘있는 인사에게 평소에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지방자치제 실시는 야당에게 확실하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국가가 선관위를 통해 정당에 정치자금을 상당 부분을 배정하고 의원 후원회를 열면서 숨통이 트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혜택이 진보정당에게까지 돌아갔다. 그래서 진보정당이 국회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여당은 선거 때의 공천이나 의원들에 대한 선거자금 지원을 사무총장을 통해서 한다. 그래서 야당은 TV에 자주 나오는 원내총무(지금은 원내대표)가 힘이 세고 여당은 사무총장이 총무보다 힘이 더 센 것이다.
정치자금에 관해서는 김상현 의원의 말이 명쾌하다.
“정치인에게 있어 돈은 정거장이어야 한다. 정거장은 지나는 곳이다. 정거장에 돈이 오래 머물면 문제가 생긴다. 더욱이 정치인에게 주는 돈은 대체로 가시가 있다. 가시가 있나 없나 잘 살펴서 받아야 한다. 가시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면 처음부터 받지를 마라.”
추신:
뇌물이 계기가 되어 생긴, 이번 대선과 김영란법의 현실을 생각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