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한정록(閑情錄)』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
함께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사람은 때로 혼자되는 때가 있습니다.
혼자가 되었을 때 보이는 세상의 풍경과 마음의 풍경들은 평소와는 조금 다릅니다.
번잡함 속에서 못 보고, 안 보이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겁니다.
‘한가로운 마음을 모으다.’
『한정록(閑情錄)』은 조선의 천재이자 문장가였고, 사회변혁의 사상가이자 로맨티시스트였던 허균이 죽는 해, 그가 펴낸 책입니다.
‘천하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다.’
『한정록』은 허균이 세상의 번잡과 공명을 떠나 은둔과 한가함을 누렸던 사람들의 옛글을
모은 것입니다.
허균은 은거와 고독을 원했지만,
버리지 못하고, 떠나지 못해 결국은 모함으로 능지처참의 형을 받고 맙니다.
한정록에 나오는 글입니다.
‘한가로울 한(閒)’의 뜻에 대해
누군가는 ‘달이 대문 안에 들이비치는 것이 바로 한(閒)’이라고 했다.
한가로움은 사람이 얻기 어려운 것인데 두목(杜牧)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면 한가로울 수 없으니
한가한 손님이 되어 이 사이에서 거닐고 싶네
그래서 오흥(吳興)에 ‘한정(閒亭)‘을 세웠던 것이다.
문 앞 큰 나무 밑에서 쉬는 한가함(閑)과
달이 문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한가함(閒) 중
어느 것이 더 한가한 것일까요.
허균이 혼자 있음에 대해 말한 것은 단절과 고독이 아닙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먹고살기 위해 좀 더 많이 얻기 위해 이미 자유를 잃고 삽니다.
파스칼도 “행복은 자신의 방에 혼자 있을 때 온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유를 꿈꾸지만 허균처럼 떠날 때를 찾지 못하고 한가로움을 못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단하지 못하는 우리의 약한 용기 때문에
‘나는 자연인이다.’는 프로는 인기가 있는 것이죠.
한정록은 은거의 자유와 고독, 은퇴,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 한편은 농사짓는 법에 대해 썼습니다. 은거를 꿈꾸었기에 귀촌에서의 생활하는 법을 기록한 것이죠.
허균의 호는 교산(蛟山)입니다.
교룡(蛟龍)은 뿔이 없는 용,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합니다.
허균의 호인 교산은 그가 태어난 강릉의 사천진해수욕장 앞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말합니다. 산의 형상이 꾸불꾸불해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허균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다른 사람이 골동품과 귀중품에 현혹될 때 그는 4천 권의 책을 구입합니다.
시대의 모순을 직시하여 ‘홍길동전’을 쓰고, 우리나라의 최초의 음식책이자 미각서인 ‘도문대작’을 썼던 허균,
그는 시대를 앞섰지만, 시대는 천천히 천천히 갑니다.
용처럼 살고 싶었지만, 시대는 그에게 끝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로 끝나게 했습니다.
허균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닐까요.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걸어갈 길을 걸어가며, 그리고 한가함을 즐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