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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Nov 06. 2015

운명을 바꾼다는 것 2

       '운명을 바꾼 사람들' - <요범사훈了凡四訓>

운명은 정말 바꿀 수 없는 것인가.


석학 토인비는 운명의 엄중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두꺼운 갑옷을 입어도 운명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왕이다.


 테바이 왕 라이오스는, 새로 태어나는 아들이 장성하면 그 아이 때문에 생명과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그래서 왕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이 아들을 어느 양치기에게 맡기고는, 적당한 방법으로 죽여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양치기는 죽이기엔 너무 가엾고 그렇다고 왕명을 어기자니 두렵고 해서 아이의 다리를 묶어 나뭇가지에다 매달아 두었다. 아이는 이런 상태로 농부에게 발견되었다.


농부는 이 아이를 풀어 지주(地主) 부부에게 데리고 갔다. 지주 부부는, 발이 통통 부은 이 아이를 양자로 삼고 그 이름을 ‘오이디푸스’라고 했다. “부은 발”이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라이오스 왕은 시종 하나만을 데리고 델포이로 가던 중, 어느 비좁은 길에서 젊은이 하나와 만났다. 라이오스 왕은 이륜차를 타고 있었고 젊은이 역시 이륜차를 타고 있었다. 젊은이가 길을 비키라는 왕명을 거절하자 왕의 마차를 몰던 시종은 젊은이의 말 한 마리를 죽였다. 이에 격분한 젊은이는 라이오스 왕과 그 시종을 죽였다. 이 젊은이가 바로 오이디푸스였으니,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 된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테바이는 대로를 횡행하는 한 마리 괴물에 몹시 시달리게 되었다. 스핑크스가 그 괴물의 이름이었다. 이 괴물은 몸은 사자의 몸, 얼굴은 여자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괴물은 바위 위에 웅크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는 수수께끼를 냈는데, 그 수수께끼를 풀면 무사히 보내 주지만, 풀지 못하면 죽여 버리는 것이었다. 이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 그 괴물과의 만남은 곧 죽음을 뜻했다. 오이디푸스는 이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도 겁을 먹지 않고 대담하게 이 괴물과 대결하러 갔다. 스핑크스가 그에게 물었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슨 동물이냐?"


오이디푸스가 대답했다.


"그건 인간이다. 갓난아기 때는 두 손, 두 무릎으로 기니 네 발이요, 자라면 서서 다니니 두 발이요, 늙으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니 세 발이기 때문이다."


스핑크스는 이 명쾌한 대답에 굴욕을 느낀 나머지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제 목숨을 끊었다.


테바이 인들은 이 무서운 괴물에게서 놓여난 것을 크게 기뻐하며 오이디푸스를 왕으로 옹립하고, 선왕비 이오카스테와 짝을 맺게 했다. 부모에 대한 내력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오이디푸스는 이로써 제 아비를 살해한 자식, 제 어미의 남편 노릇 하는 자식이 된 셈이다.


이 무서운 사실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채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테바이에 전염병과 기근이 돌자 사람들은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신의 뜻을 읽어 보려 했다. 그리고 그 뜻을 새겨 읽은 사람들은 비로소 오이디푸스가 두 가지 죄를 지은 엄청난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


 오이디푸스의 엄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이를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오이디푸스는 발광하여 제 눈알을 뽑고는 테바이를 떠나  비참한 방랑 생활 끝에 그 불행한 삶을 끝냈다.

운명을 거부하려고 아무리 도망쳐도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인용되는게 바로 오이디푸스의 비극이다.


이 불행한 운명,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분석한 사람이 있었다.


이 분석은 오스트리아에 있던 무명의 프로이트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만든다.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이름 짓는다. 남자아이는 자기도 ‘아버지처럼 자유롭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원망이  ‘아버지와 같이 되고 싶다’는 선망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유아는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의 정상적인 성애로 발전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신경증 환자는 이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여자 아이가 아버지에 대하여 성적 애착을 가지며 , 어머니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는 성향을'엘렉트라콤플렉스(Electracomplex)’라고 한다.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는 불교를 만든 석가모니를 빼놓을 수 없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인도의 작은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 “이 아이는 외부의 병들거나 죽는 사람을 보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궁을 떠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자랄 때부터 임금의 특명으로 궁궐 밖으로의 외출도 금지되고 생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한숨, 병, 환자 이런 것들로부터 철저히 차단시킨 채 성장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고도 자신의 후계가 갑자기 사라져 왕국의 운명이 흔들릴까 봐 왕자를 일찍 결혼을 시킨다. 여인들의 사랑으로 세상의 즐거움을 알아 왕국을 운영하기를 바라는 소망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성문이 열린 문틈으로 보인 탁발하는 모습과 병든 환자를 보며 왕자는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인생의 희노애락의 숙명적 고통을 너머 도를 깨닫기 위해 궁을 떠나려 하지만,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29살 때 부인이 대를 이를 왕자를 출산하지만 석가모니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오죽했으면 석가모니는 왕자인 아들의 이름을 ‘장애물(라훌라)’이라 지었을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화두를 우리에게 주었던 성철 큰스님.  


성철 스님 또한  결혼한 후에 출가했다. 스님은 외동 딸이 대학을 마치고 출가를 위해 절을 찾자 법명을 ‘불필(不必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로 주었다.


“구도의 길을 위해 혼자 가는 중은 가족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구도의 길이 험하다지만 인간적으로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성철 스님의 모습은 부처님이 왕자인 아들 이름을  ‘장애물’이라고 내린 것과 겹쳐지는 것이다.

남편에 이어 다 큰 딸까지 불문에 빼앗긴 성철스님의 아내는 “도대체 불법이 뭐길래 남편에 이어 딸까지 내게 빼앗아 가나”며 딸을 찾아 절에 갔다가 결국은 그녀도 출가를 한다. 온가족이 출가를 한 것이다. 운명을 바꾸는 구도의 길은 이처럼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부왕이 출가를 완강히 막자 석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게 해주신다면 출가를 포기하겠습니다.”


이것은 최고권력을 가진 임금으로서도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석가는 어느 날 밤,  마부 하나를 데리고 출가를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궁성으로 돌아가서 나의 출가를 알려라.

나는 생사를 해탈하지 않으면 궁성을 밟지 않으리라. 나를 태어나지 않은 자식으로 생각하라고 알려라”


석가는 홀로 있으며 조용히 발원했다.


영리번뇌(遠離煩惱)     영원히 번뇌를 떠나서

구경적멸(究竟寂滅)     구경의 적멸을 얻을 것이며

동불출가(同佛出家)     제불과 같이 출가하여

구호일체(救護一切)     일체중생을 구호하리라.  


출가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몸으로 하는 ‘신(身) 출가’와 마음으로 하는 ‘심(心) 출가’가 있다.


몸으로 하는 출가는  스님이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하는 출가는 세상에 살더라도 자신의 마음속에 자비를 지니며,  자신의 생명에서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부처님같이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출가의 이유는 세상의 인연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목적은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서 깨닫는  즐거움, 열반에 들기 위해서다. 출가(出家)는 결국 출세(出世)를 해야 완성된다. 출세는 출가해서 얻은 지혜와 덕을 세상 속에 나아가서 돌려주는 것이다. 세상에서 얻었으니 세상으로 돌려주는 것, 그리고 다시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깨닫는 삶이다.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것은 역대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그래서 문학작품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나 영혼을 악마에 팔아 현재의 비루한 운명을 바꿔보려는 시도가 나온다. 하지만 악마에게 영혼이나 그림자를 파는 시도들은 현재의 불행과는 또 다른  새로운 불행과 비극을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극명하게 깨닫는다. 비극을 통해 자신이 무엇이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운명을 바꾸는 것을 다른 말로 ‘개운(開運)’이라고 한다.


 운이 트인다, 행운을 연다는 의미를 지닌 개운은 내 운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운명을 여는 것, 운명을 자각하여 본래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보석은 온갖 불순물이 함께 섞여서 존재하지만 제련을 통해 보석으로  만들어지듯이 개운은 내 운명의 불순물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주팔자가 좋지 않거나 나쁜 운명을 좋은 운명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운명을 바꾼 사람의 대표적 사례로 드는 것이 원황이다.


명나라의 학자 원요범(袁了凡. 1533~1606)은 임진왜란 때 군사고문으로 이여송과 함께 조선에도 왔다. 그는 평생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싸운 사람인데 그 고민과 투쟁의 결과물을 자식들에게 가훈으로 남긴 것이 바로 <요범사훈了凡四訓>이다. 운명을 바꾸는 네 가지 교훈이다.  이 책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수백 년 동안 운명을 바꾸는 ‘개운서(改運書)’로 널리 알려진 명저이기도 하다.


원요범은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러한 책을 쓰게 되었을까.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위해 의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상수역학(象數易學)에 정통한 공(孔)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원요범의 앞날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당신은 의학공부를 그만두고 학문을 해서 벼슬을 할 운명이다. 초시에서는 14등으로 합격하고,  그다음 시험은 71등으로 합격한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9등을 할 것이다."


원요범이 다음해 시험을 쳤는데, 세 시험의 등수가 노인의 말과 똑같았다.  공노인은 원요범에게 "당신은 모년에 공생(貢生)이 되고 공생에 뽑힌 후 모년에는  쓰촨 성의 대윤이 된다. 대윤에 부임한 지 삼 년 반이 지나면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53세가 되는  8월 14일 축시에 거실에서 죽는다. 아깝게도 자식은 없다"고 예언하였다.


 원요범이 10대 후반에 들었던 이 예언은 관직생활을 할수록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모두 들어맞았다. 이로 말미암아 원요범은 인생의 나아가고 물러남, 더디고 빠름도 운명에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그것을 알게 되자 원요범은 “나는 53세가 되면 죽을 것이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고 53살이면 자기가 죽는다는 생각은 그에게 인생의 모든  의욕을 빼앗아 간다. 매사에 야망과 의욕을 버리고 담담하게 생각하게 하고 더 이상 뭘 구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운명론자가 된 것이다.


그러던 그가 37세가 되던 1569년에 우연히 남경 서하산(棲霞山)에 머무르던 운곡선사를 만나면서 인생관이 바뀐다. 요범은  운곡선사와 한방에 마주 앉아 토론하며 사흘 동안  밤낮으로 눈을 붙이지 않았다. 이에 선사가 놀라 묻는다.


“평범한 사람이 깨닫기(성인) 어려운 것은 잡념과 망상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은 사을 밤낮을 한순간도 잡념과 망상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어찌된 일이오?”


그러자 요범은 이렇게 대답한다.


“제 운명은  공 선생이 계산하여 적어 놓았는데 영욕이나 생사가 일정한 때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꿈을 꾸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알기에 망상을 생각할 건더기가 없습니다.”


그 말에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대를 호걸로 여기고 대했는데 이제 보니 범부에 지나지 않는구려.”


요범이 놀라서 그 까닭을 묻는다.

 

“범부는 무심의 경지에 들 수 없어 결국 음양의 원리에 묶이게 되니 어찌 운수가 없을 수 있겠소? 하지만 오직 보통 사람에게만 운수가 있을 뿐이오. 지극히 선량한 사람은 운명이 전혀 속박하지 못하오.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10대 들었던 그 운수에 묶여 꼼짝하지 못했으니 어찌 범부가 아닐 수 있겠소?”


요범이 “그러면 그 정해진 운수를 피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묻는다.

여기에서 선사가 한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운명은 나 스스로 짓는 것이고, 복은 자기에게서 구하는 것이오.”


요범은 “도덕과 인의는 힘껏 노력하면 구할 수 있으나, 부귀공명은 이미 정해진 것인데 사람이 노력한다고 어떻게 구할 수 있겠습니까?” 반문한다.


선사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구하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힘쓰기에 따라 인의 도덕뿐만 아니라 부귀공명도 함께 얻을 수 있소.”


 이 말에 요범은 수긍하지 않고 자신이 대윤이상의 벼슬을 할 수 없는 이유와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운명, 오래 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대가 이미 잘못된 줄을  알았으니 박복한 운명은 진심을 다해 바꾸고 고치시오. 힘써서 덕을 쌓고 거칠고 더러운 것을 포용하며,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고 사랑하도록 힘쓰시오. 지난날의 행실은 마치 어제 이미 죽은 것과 같이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여러 가지 것은 바로 오늘 새로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여기시오.” “주역에 ‘선(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넘치는 경사가 있다(積善地家 必有餘慶)'는 말이 있소. 그대는 이 말을 믿을 수 있겠소.”


내가 이렇게 자세히 선사와 요범과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선사와 요범과의 문답을 축약시켜서 설명해서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요범은 크게 깨달아 3천 가지 선행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요범은 그날 평범을 끝마친다는 뜻에서 호를 요범으로 바꾼다. 시간을 허송세월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매일매일 스스로 노력하며 자신을 독려한다. 운명을 바꾸는 일에 ‘귀인’을 만나면 되는데 요범에게는 그 귀인이 바로 운곡선사였던 것이다.  항상 잘못을 저지를까 스스로 경계하며, 설사 남이 자기를 미워하거나 비방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자신을 성찰하며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과정을 통해 요범의 인생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38세에 지방과거에 합격하고 1581년 진사가 되어 벼슬길에 나선다. 그리고 53세에 죽는다는 공노인의 예언과 달리 1606년 74세에 죽는다. 요범은 63세가 되던 해, 아들 원엄을 위해 교훈서를 쓴 것이다.






요범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운명이  어떠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운명이 순탄하여 영화로울 때는 늘 몰락하여 적막할 때를 생각하라. 당장 의식주가 풍족할 때는 늘 가난하고 구차할 때를 생각하라.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공경할 때는 늘 두려움과 조심함으로 사람을 대하라. 날마다 잘못된 것을 알아차려, 매일매일 잘못을 고치도록 힘써라. 어느 하루 고칠만한 과실이 없으면, 곧 그날은 진보가 없게 된다.”


“천하에 총명하고 준수한 사람이 적지 않지만, 공덕을 높이 쌓고 수양을 깊이 닦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타성에 젖어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고 기존 관행을 따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여 평생을 허송세월 하기 때문이다.”


요범은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고 이렇게 노력했다.

 이렇게 힘쓴다면 세상에 달라지지 않을 게 무엇이 있을까.


운곡선사가 준 ‘공과격(功過格)’은 자신의 삶의 성적표이다. 매일매일 자기가 한 선행과 실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공과격’에는 77개의 선행과 83개의 악행을 1점, 3점, 5점, 10점, 30점, 50점, 100점으로 나누어 정해놓았다.


선행은 플러스, 악행은 마이너스다. 이렇게 행동 하나하나를 계산하여 하루를 가급적 플러스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 중 선행 몇 가지를 설명하면

사람의 착한 일을 한 번 칭찬하는 것(1점), 다른 사람의 배고픔을 구제하는 것(1점),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는 것(3점), 덕망 있는 사람을 천거하여 인도하는 것(10점), 연고 없는 시체를 장례치뤄 주는 것 (50점), 한 여자와 평생 맺고 사는 것(30점), 한 사람의 죽음을 구해주는 것(100점) 등이다.


악행은 싸움을 선동하는 것(-1점), 음심을 품는 것(-1점),  하인을 학대하는 것(-10점), 스승과 어른을 배반하는 것(-30점), 불충이나 불효 같은 큰 죄를 짓게 교사하는 것(-50점), 유부녀를 범하는 것(-50점),  살인하는 것(-100점) 등이다.     


 요범에 의하면 사람이 생각을 바르게 가지려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 신통한 꿈을 꾼다고 한다. 눈과 마음이 열리며 예지력이 생기는 것이다. 다가오는 불행을 막기 위해 더러운 오물을 토해 내거나 옛 성현이 자기를 손잡아 이끌어 주시기도 하고, 혹 허공을 날거나 걷기도 하고 좋은 깃발이나 보물 덮개 기타 각종 훌륭한 사물을 얻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현세의 선행을 통해 과거에 자기가 쌓은 허물이 모두 사라지고 죄가 없어지는 징표라는 것이다.


마음을 닦으면 꿈의 내용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운명이 바뀌기 시작하는 조짐으로 해석된다. 원요범은 운명을 바꾸기 위해 3천 가지 공덕을 쌓기로 결심하였다.  


선행록을 만들어 놓고 한 가지 선행을 할 때마다 즉시 붓으로 기록하였다. 부부가 합심으로 선행을 해서 3천가지를 했으나 그 이후에는 여간해서 선행이 늘지를 않았다. 어떻게 해야 선행을 더 쌓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자 하루는 꿈에 선인이 나타나 길을 알려주었다.

“백성들이 지금 세금이 너무 높아 살기가 어려우니 당신은 현감으로 세금을 감해주면 아마 1만 가지 선행을 한꺼번에 쌓는 것이 될 것이오.”


<요범사훈>과 <공과격>이 말하는 인생을 바꾸는 주요 선행은 다음과 같다.


1. 남들과 함께 선을 행하여라

2. 사랑의 마음과 공경의 마음을 항상 간직해라

3. 타인의 미를 완성시켜라

4. 남들도 선을 행할 수 있도록 권장하라

5. 타인의 위기를 구해주어라

6. 커다란 이익을 일으켜 세우라

7. 재물을 희사하여 복을 만들라

8. 정법을 보호하고 지켜라

9. 윗사람을 공경하고 존중하거라

10. 다른 생명을 존중하라


요범이 말한 4가지 교훈은  
운명을 세우는 공부(立命之學),
잘못을 고치는 방법(改過之法),

선을 쌓는 방법(積善之方),
겸손과 덕의 효과(謙德之效)이다.


세상의 직업에는 상생적인 직업과 장의의 직업이 있다.

상생적인 직업은 덕이나 선을 쌓기가 쉽다. 교육이나 의료 같은 직업이다. 장의의 직업은 다른 사람들의  분쟁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변호사나 은행원, 기업합병 전문가 등이다. 그래서 법을 다루는 집안의 부는 덕을 쌓지 않으면 그 부가 3대를 가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대학의 설립자들은 의료인이 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자기를 '고소남'이라 자랑스럽게 외치며 사무실 포스터 구호를 '너, 고소!'라고 하는 변호사를 보면 안타까운 것이다.


기업인도 이익을 먹고 살지만 많은 가정을 책임진다. 애국을 떠나 덕을 쌓는 것이다. 변호사도 좋은 일을 하는 변호사도 많다.

은행원도 대출을 자기의 권력으로 생각하고 힘주면서 기업을 죽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로사항을  들어주며 기업을 살리는 사람도 있다.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다.한가지 잣대만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직업을 택하든 사람이 운명을 바꾸는 가장 큰 일은 마음을 밝히고 선을 쌓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당장 운명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약은 서서히 약효가 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급한 효과만을 바란다.

그렇게 급하게 운명을 바꾸는 게 바로 귀인을 만나는 일이다.








--운명을 바꾸고 자신의 천명을 찾는 인생 나그네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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