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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Oct 12. 2015

행복한 인생과 도(道)

내 운명을 찾아서

행복은 무엇인가?  


세네카의 말처럼 적절한 돈, 적절한 지위, 적절한 권력, 적절한 명예, 적절한 건강, 적절한 환경을 갖고 있는 것이 행복일까. 이런 것을 어느 정도 섞어서 갖고 있는 삶이 행복일까.

 

한 철학자는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보다는 오히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말이 더 대답하기 쉽다고 했다. 그만큼 행복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인간은 불행이 닥쳐야 비로소 행복을 알아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자신에 대해 행복을 느낀다. 서울역의 노숙자나 술집의 여자 등 다른 이의 불행해진 모습을 보며 자신의 현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자크 프레베르는 “나는 그것이 떠나가면서 내는 소리를 듣고서야 행복이 내 가까이 있었음을 알았다”고 시인답게 표현했다.


행복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승진했을 때, 저택을 샀을 때, 권력을 얻었을 때,  큰 돈을 벌었을 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 이런 것들이 행복인가. 아니면 단순히 이런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일까.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열망하지만 사실 행복이란 말은 애매하고 덧없으며 측정하기도 어려우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포괄적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심리학이든 사회학이든 관련 분야에서는 오히려 ‘삶에 대한 만족감’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 박근혜정부가 ‘국민행복’ ‘행복주택’ ‘행복교육’ 등의 말을 마구 쓰는 것은 정말 용감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개념도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말을 쓰는 사람들 말고는 그 정책으로 인해 행복하거나 행복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기에 더 그렇다.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이 서야할 ‘운명의 길’에 서는 것이다.


 <행복을 철학하다>를 쓴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말처럼, “행복하다는 것은 선택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자신의 길, 직업, 삶의 방식, 사랑하는 방식 등 살아가면서 만나는 삶의 중요한 것에 대하여 선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친구나 배우자, 직업, 삶의 모토, 살아가는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받는 모든 유혹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고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야 어떤 것은 포기하고 어떤 가치는 추구하며 일관성 있게 자신의 삶을 이끌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것이다.  삶에 의미를 준다는 것은 방향성과 중요성이라는 두 가지의 뜻이 있는 것이다. 인생에 의미를 준다는 것은 자신이 가야할 운명의 길에 대한 방향과 중요성을 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항구로 갈 지 모르는 자에게 좋은 바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행복해 지는 것의 핵심은 ‘덜 유명해 지고’ ‘덜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명해 질수록, 많이 가질수록 번잡한 것들이 함께 따라와 행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다.  목표에 이르기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수단을 확장시키는 게 낫다”고 했다.  높은 목표를 향해 살 것인가. 그보다 낮추어 살 것인가. 높은 목표 때문에 ‘저녁이 없는 삶’을 살 것인가. 목표를 낮추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것인가.이처럼  인생은 선택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 왕자>에게 말한다. 정치인은 자기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도시를 만드는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가로등 불을 켜는 사람은 가로등 때문에 모두 자기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을 내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그 자리를 물러났을 때 깨닫는다.

 자기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이 세상이 온전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도(道)를 아십니까?’


그 도는 자신의 인생이요 길이요, 천명이다.


 인생의 행복은 바로 천명을 아는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걷는 것이다.

길 위에서 도를 찾고 깨우쳤던 공자, 예수, 석가, 마호멧- 그 들 모두 길 위에서 길을 열었다.

길 위에 선 나그네처럼 살아가면서 깨닫는 게 인생이고 천명이다.    


"아침에 도를 깨달은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는 공자의 말처럼

아침에 깨달아 저녁에 죽어도 좋을 정도의 도(道)는 하늘이 자신에게 준

 자신의 운명을 아는 것이다.


감옥에 28년을 있었던 만델라도 좋아했다는 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이 알려주는 시이기도 하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흙같은 암흑

신(神)들이 무슨 일을 벌일 지라도 감사한다.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놓아 울지 않았다.

내려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았다.

분노와 눈물이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기다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저하지 않으리.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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