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순훈 Nov 19. 2015

남자의 결심, 그리고 탄식

이사(李斯)가 한 다섯번의 탄식을 보며 ...

오늘은 남자의 결심과 탄식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세계사나 국민윤리에서 배웠던 이사는 한비자, 상앙 등과 함께 법가(法家)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사(李斯)는 빈털터리 지식인에서 진시황을 도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를 이룩하여 신하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재상에 오른 인간승리의 표본입니다.

그는 통일제국의 문물과 제도를 구석구석 정비한 뛰어난 설계자이지만, 자기 손으로 만든 통일제국을 망치면서 결국은 저잣거리에서
허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아 처참하게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별볼일 없는 평민 출신 지식인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재상이 되기까지, 휴가 나온 자식을 위해 벌인 잔치에 수레와 말이 수천이나 몰릴 정도로 화려한 삶에서 족이 멸족당하는 처절한 최후까지  보면 이사의 인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합니다.


이사는 원래 진나라 출신이 아닙니다.
그는 진나라에 '정나라 첩자 사건'이 벌어지자 진나라 내부에서 다른 나라 출신들은 모두 내쫓으라는 '축객령(逐客令)'이 떨어집니다.

이 때 이사는 '축객령'을 반대하는 글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진나라 역사상 외국 출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천하의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논지의 축객령에 대한 간언이라는 뜻의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립니다.

이 글에서 이사는 "태산은 흙  한 줌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은 것이고, 강과 바다는 도랑물과 개천 물 등 이런 저런 물들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기에 그렇게 깊은 것입니다."라는 만고의 명언을 남깁니다.  


훗날 이 말은 줄여서 '산불 양토'(山不讓土: 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는다)와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강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로, 대망을 가진 사람의 인재 포용을 뜻하는  명구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갖는 의문은 누구보다 많이 배우고 영리한 이사가 어째서 저급하고 비열한 내시, 조고에게 넘어가 자신의 손으로 제국을 망치고 자신을 망쳤는가 입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이사 열전'이라는 항목을 두어 그를 비중 있게 다루는데, 이사는 평생 다섯 번의 탄식을 합니다.

그것은 남자의 결심과 인생, 후회와 관련이 있기에 그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이사의 첫 번째 탄식은, 젊은 날 말단 관리를 할 때 쥐를 보고 느낀 깨달음이었습니다.

똑같은 쥐라도 변소에 사는 쥐와 곳간에 사는 쥐가 사람이나 개를 보고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변소에 사는 쥐는 사람이나 개가 접근하면 깜짝 놀라서 두려워했지만,  곳간에 사는 쥐는 사람이나 동물을 보고도 전혀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사는 "사람이 잘나고 못난 것도 쥐와 같구나. 어떤 환경에 처했느냐에 달렸을 뿐이다"며 자기의 처지를 변소에 사는 쥐로 생각하며 탄식합니다.

이사는 이를 계기로 입신출세에 대한 결심을 하고 강렬한 욕망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 탄식은 통일제국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막강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 때입니다.

이사는 아들 이유(李由)가 휴가를 내어 집에 오자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문무백관이 참석했는데 이때 하객들이 끌고 온 수레와 말이 수천을 헤아릴 정도였습니다.    

이사는 자신의 부귀가 극에 달았다고 한숨을 쉬며 "만물이 극에 이르면 쇠퇴하거늘, 나는 어디서 멈춰야  할지 난감하구나." 하며 탄식합니다.


세 번째는 진시황의 갑작스런 죽음에 내시 조고의 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무혈 쿠데타에 가담하며 이사는 "아아!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홀로 죽을 수도 없고, 대체 어디에 이 목숨을 맡긴단 말인가!"라고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네 번째 탄식은 유서 조작으로 태자와 그 측근을 해치고 어리석은 호해를 황제로 앉힌 조고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사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려 황제에게 글과 말로 조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가 장차 변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오히려 조고는 이사의 아들이 반란군과 내통한 혐의가 있다며 이사를 역모로 몰아 감옥에 가둡니다. 그때 이사는 어리석은 황제 호해를 원망하며 네 번째 탄식을 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탄식은 처형을 앞두고 하게 됩니다. 이사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둘째 아들을 끌어안고 "내 너와 함께 누렁이를 데리고 고향의 동쪽 교외로 나가 예전처럼 토끼 사냥이나 하려고 했는데 때를 놓쳐 다 허사가 되었구나."라며 통곡합니다.


이사는 초기 강직한 인물이었으나, 변소의 쥐를 보며 스승인 순자의 문하를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천함보다 더 큰 부끄러움은 없으며, 빈궁함보다 깊은 슬픔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비천한 지위와 고달픈 처지에 놓여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증오하며 자기 힘으로 실행하지 않는 것에 의지하려는 것이 선비의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뜻을 펼치는 데서 시작한 이사의 결심은 나중에 손에 쥔 부귀영화를 잃을까 염려하여 자신의 영혼을 팔아 결국 자신도, 집안도, 나라도 망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사는 변화무쌍한 인간의 삶을 성찰할 능력과 지식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자기를 망쳐 2천 년이 넘도록 후세에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름과 뜻을 지키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사의 결심과 탄식을 보며,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멈춰야 할 때를 안다는 것(知止)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