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순훈 Nov 20. 2015

꽃들도 다 피는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을 피울 때가 있다고 믿어요. 그게 인생이어유 -장사익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바칩니다.



카센터 직원, 보험사원,과일장사  등 15개의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그런 암흑의 세월을 보내다 45살에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수는 많지만 가장 한국적인 노래를 한다는 소리꾼, 장사익입니다.


그는 돈이 없어서 좋아하는 노래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장사익을 찾아 낸 사람은
천재 피아니스트로 전국을 유랑하는 걸로 유명한 선객(禪客) 음악가라 불리는 임동창입니다.
살림 예술가이자 한복 디자이너인 이효재를 아내로 둔 바로 그 사람.   


임동창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음악가”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그는 피아노와 사물놀이를 함께 공연하는 음악까지 시도한 사람입니다.


1994년 여름, 사물놀이패의 공연 뒤풀이에서 임동창이 피아노를 치고 장사익이 ‘대전 부르스’를 불렀는데, 그 노래에 감명받아 임동창이
“형, 공연 딱 한 번만 합시다.”권했죠.  
장사익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입니다.

그해 11월, 서울 서교동의 100석짜리 극장에 하루 400명씩 이틀간 800명이 몰렸습니다. 간이의자에 입석까지 팔아도 들어갈 자리가 없어 같은 건물 위층에 있는 카페에 대형 모니터를 갖다 놓고 공연을 생중계했습니다.

그때 ‘생중계 기획’을 한 사람은 장사익의 팬이었고, 이듬해 장사익은 그 팬과 결혼했습니다. 그날 이후 장사익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아내 고완선입니다. 노래를 부르자 아내까지 하늘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장사익은 공연 첫날을 이렇게 말합니다.


“첫날 공연을 하고 이튿날 아침 눈이 번쩍 떠지면서 아, 바로 이거구나 했어요. 그때 ‘행복’이란 것을 태어나서 처음 느꼈어요. 이때까지 먹고살 걱정만 했지, 내가 행복한 일을 찾지 않았구나 한 거죠.

내 노래 중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가 있어요.
 딱 그 느낌인 거예요.
엄마 아버지 형제들 친구들, 심지어 나를 자른 사장님, 넘어뜨리고 쓰러뜨린 사람들조차 반갑고 고맙고 기쁜 거예요.

그 사람들이 딱 그 자리에 있어 가지고 오늘의 저를 만든 거예요.

가수하기 전의 내 사진을 보면 웃는 사진이 없어요. 근데 그 후의 사진은 죄다 웃고 있어요.”


장사익의 데뷔 무대를 우연히 본 연극인 손숙은 당시 한 주간지에 “이미자와 조용필만 가수인 줄 알았더니 장사익도 있더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장사익에게 앞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힘과  용기, 그리고 자신감을 불어넣게 됩니다.  


이걸 보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습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후 , 초대받은 몇 명의 화가나 평론가들이 그림에 대해 혹평을 했을 때 피카소의 그림을 알아보고 격려해 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당대 최고의 가, 피카소의 그림을 평생 전담하여 팔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됩니다.
가장 불우할 때 자신을 알아보고 격려해 주었기에  피카소가 잊지 않고  보답한 것입니다.


요즘은 가수를 하려는 젊은이가 너무 많습니다.

‘슈퍼스타 케이’를 보면 젊은이들이 가수가 되려고 구름처럼 모여듭니다.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장사익은 이걸 보고 말합니다.


“요즘 가수들은 젊어서부터 가요 기획사에 들어가 노래를 배운 후 인생을 배우지만, 나는 거꾸로 인생을 배운 다음에 노래를 불렀다 ”


그의 노래가 오래가는 이유입니다.
장사익 노래에는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부른 '찔레꽃'이나 '봄날은 간다'에는  인생의 깊은  정한과 아픔,굴곡과 사랑이 녹아있습니다.그래서 사람들의 가슴을 통째로 흔드는 혼을 담은 소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인생을 모르고 노래부터 배운 어떤 여자가수는 인기로 벌어들인 돈 때문에 가족과 소송하며 척지는 내용이 보도가 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소리꾼이 소리를 얻는 경지, 그것을 '득음(得音)'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판소리에 적합한 음성, 즉 수리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목에 상처를 내고 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 목이 막히면 득음을 위해 똥물까지 먹을 정도로 득음을 위해 가는 길은 처절하고도 험난합니다,


인분에 대나무를 꽂아 대나무에 맺힌 그 물을 먹는 겁니다. 한이 맺힌  정한의 깊은 소리를 얻기 위해 일부러 눈까지 멀게도 합니다.

우리가 ‘똥물’을 먹고 눈까지 잃는 고통을 겪는 노력을 한다면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팔자가 바뀌는 일이 아닌데도 말이죠.


소리꾼이 ‘득음’을 했다고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까지 뚫고 나가는 소리를 얻기 위해 혼자서 하는 독공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명창이 자기만의 소리를 얻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밝은 아침, 낮, 밤 이렇게 순서대로  세월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장사익처럼 45년간 한 번도 웃지 못하는 밤의 세월부터 겪은 후 밝은 대낮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수저를 푸념한다고 수저의 색깔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 수저를 들고 열심히 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세월이 흘러 수저 색깔도 바뀌는 것이죠.


아직도 나의 세월이 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80이 넘어 빛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강태공으로 불리는 태공망처럼.

 

가객 장사익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을 피울 때가 있다고 믿어요. 그게 인생 이어유.”


봄에 피는 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꽃도 있습니다.

당신은 일찍 피는 꽃인가요,
아니면 늦게 피는 꽃인가요?


당신의 꽃이 피는 날을 응원합니다.


꽃피우는 그날까지 견뎌낼 당신을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채근담 菜根譚>의 인생 10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