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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Dec 06. 2015

만남과 인연, 그리고 사랑

"내 좋은 사람과 있으면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 미, 미안하오…정말 미안해요.”


머리가 다 빠진 한 늙은 남자가 어렵게 내뱉은 말에 흰머리의 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육십 년 만에 만나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러면서 말을 잊지 못하고 흐느꼈습니다.   

지난 10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65년 만에 만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꽃다운 나이  열여덟 살과 스무 살에 만나 결혼한 이순규, 오인세 부부였습니다. 6.25 전쟁으로 헤어진 거죠. 아내 이순규는 헤어질 당시 임신 중이었고, 그 아들은 65세가 되었고 아내는 84살이 되어 두 사람이 만난 것입니다.


“…살아있어서 고마워.”

“…미안하고 고맙소.”      


“잘 가세요…여보…”


65년을 기다려 온 이들의 만남은 열두 시간 만에 이렇게 끝났습니다.



사람의 인연과 만남은 이렇게 운명을 결정지으며 가슴 아픈 사연을 만들어 냅니다.

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만남도 그러했습니다.


백석이 함흥고보에 교편을 잡았을 때, 환영식이 열리던 권번(기생집)에서 이 두 사람은 만나게 됩니다.  김영한은 금광을 하던 친척에게 속아 집안이 몰락하여 기생학교에 들어갔으나, 그녀를 후원하던 신윤국을 만나 여학교를 가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후원자가 구속되자, 함흥으로 면회하러 왔다가 옥바라지를 위해 잠시 권번에 의탁했습니다. 교사들 회식 장소에서 백석과 진향(김영한의 기생 별호), 이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백석은 옆 자리에 앉은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말이라는 것은 가슴에 가두었을 때와 표현했을 때가 다릅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말은 그 말처럼 힘이 되고 용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백석은 26살, 김영한은 22살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석과 기생과의 만남은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백석이 진향을 따라서 함흥과 서울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사랑을 쌓아갔습니다. 부모가 불러 고향 정주를 잠시 다녀올 때 백석은 부모의 강요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초례만 치르고 도망 오지만 다시 불려 가 또 결혼을 하여 백석의 고향집에는 두 명의 신부가 있게 됩니다.


그러자 백석은 마침내 결단을 내려, 부모님이 찾지 못하는 만주로 두 사람이 도망을 가자며 김영한을 설득하지만 거절당합니다. 백석의 인생에 자기가 걸림돌이 된다는 마음에  괴로워했고, 한편으로는 부모의 강요라 해도 그걸 뿌리치지 못하고 다른 여자들과 두 번이나 결혼한 것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섞인 것입니다. 애증이 엇갈린 것이죠.

 

고민 끝에 내린 자신의 결정을 그녀가 받아주지 않자, 백석은 어느 날 새벽 시 한수만

남기고 떠납니다.


이것이 평생 그리움과 사랑의 상처를 남기는 두 사람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당시 백석이 남긴 시입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히(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백석은 혼자서 만주로 떠나고, 해방이 되자 조만식 선생이 그를 아껴 그 옆에 눌러앉게 됩니다.  김영한은 영어교사였던 백석과의 만날 때를 생각해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번 막힌 삼팔선은 열리지 않았고 그녀는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말해지는 서울 ‘대원각’의 주인이 되어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빈 마음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김영한은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이 되면 하루 동안 어떤  음식도 일체 먹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그녀의 방식대로 표현한 것이죠. 그녀의 노년은 마침내 해금이 된 백석의 시를 조용히 읽는 게 생애 최대 기쁨이 되었습니다.  백석의 시는 그녀의 말대로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신선한 생명의 물“이었던 것이죠.


시인의 아내로 평생 살고 싶었던 김영한은 백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고민하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이 정도의 글을 쓰시는 분이라면 자신이 평생 일군 대원각을 세상에 뜻있게 쓸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무 조건 없이 기탁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이를 한마디로 거절합니다. 스님 중에는 살림을 책임지는 분도 있지만, 법정 스님은 사찰 내에서도 어떤 직책을 맡지 않고 오직  수행과 공부에만 전념하며 글을 쓰시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1천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공짜로 주겠다는 데도 받지 않겠다는 이 아름다운 사양은 결국 법정 스님이 이 재산을 받아 '길상사'라는 절을 만드는 것으로 결실이 맺어졌습니다.  글 한편의 감동으로 평생의 재산을 다 넘기고 그녀가 받은 것은 염주 한 벌과 '길상화'라는 법명이 전부입니다.


이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김영한이 한 말은 그녀의 마음을 담았기에 유명해졌습니다.


“무엇이 아까울까요. 백석의 시 한 줄 값도 안 되는데.”


길상사 안에 있는 법정 스님의 말입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아낌없이 전 재산을 준 김영한이나 이를 받은 법정 스님의 심정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법정스님도 세상에 더이상 말빚이나 글빚을 남기지 않겠다며, 당신이 쓴 모든 책을 절판시키며 우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세상을 멋지게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죠.  

 

김영한  못지않게 사랑을 했고 사랑을 약속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으로 혼자서 고독하게 행려병자처럼 시립병원에서 죽어간 여류시인 노천명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만남과 인연, 사랑을 보면서 백석이 말하는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왜 하늘은 이 세상에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한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여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일까요.

 

다음 생이 있다면 이산부부나 백석부부나 노천명 시인이나 두 사람의 맺지 못한 사랑이 이루어져, 비록 산골에 이름 없이 묻혀 살더라도, 시인의 말처럼  ‘여왕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사랑 때문에 힘들어도, 그 사랑이 우리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하여 힘을 드리기 위해,

 노천명 시인의 시를 동봉합니다.


지금 그녀의 소식은 잊혔지만, 이 시는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여학생이 제게 주었던 시이기도 합니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 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짓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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