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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훈 Jan 03. 2016

빈틈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기에 사랑한다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했을 것이다.

.....................


박정수의 노래,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의 가사입니다.


박수근 화백의 유화



‘빈틈’은 허술하고 부족하다는 것과  물체와 물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이라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일을 하는데서는 빈틈이 없어야 하지만, 사람에게 빈틈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을 가까이 하기 어렵게 합니다.


꽉 차고 빈틈이 없는 사람은 왠지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내가 어렵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마치 날이 선  칼처럼  사람을  이유 없이 긴장시키는 겁니다.    


남자 친구에게서 ‘너는 빈틈이 많은 여자야’라는 소리를 듣고 고민하는 여자를 보았습니다. 나쁘게 생각하면  못하는 게 많고 실수와 허점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이 말을 한 남자친구의 속마음은,  그래서 챙겨줄 게 많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한 겁니다.


 우리는 오히려 일도 잘하고 미인임에도 남자친구가 없는 여자들을 보게 됩니다.  '빈틈이 없는 여자'이기에 남자들이 그녀에게 접근을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얼굴도 몸매도 별로인 여자가 남자들에게 오히려 인기가 많은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그녀의 빈틈과 미소, 밝은 성격이 남자들을 모이게 해 ‘황금어장’을 만드는 것이죠.    


여자가 너무 빈틈이 없으면 남자들은 접근하기  어려워합니다.



문자 할 땐 재밌고 전화할 땐 설레고

막상 우리 서로 만나면 또 눈치만 보네


무슨 남자가 그래 내가 어때서

우리 어떤 사인데 무슨 그런 말을 해

눈치 없이 툭툭 말해도 니가 좋은 걸


틈을 보여줘 서두르진 마

티좀 내줄래 나도 여잔데

내가 둔한 건지 글쎄 그럼 몰라

꼭꼭 숨지 말고 맘을 열어

.................................



가수 소유가 부른 ‘틈’의 노래말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틈’을 보여 달라는 겁니다. 자기를 좋아한다는 ‘티’도 내보라고 하구요.


빈틈이 있어야 이렇게 사랑도 오고, 사람도 오게 됩니다.

 


박수근 화백의 수채화



매사에 완벽하지 않으면,  마치 실수를 하는 것 같아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면 꼭 들려주고 싶은 영화의 대사가 있습니다.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미친 사람처럼 일일이 다 메우며 살 수는 없다.”


정보가 넘치고 잘난 사람이 많아서 그럴까요,

TV에서는 오히려 <바보 전쟁>이라는 프로가 인기입니다.


그래서 잘난 세상에 오히려  바보처럼 살고 싶다고,  ‘바보 선언'까지 합니다.

바보 선언문을 볼까요.


•  나는 부족한 지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  나는 모르면서 일부러 아는 척을 하지 않겠습니다.

•  나는 모르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물어보고 최선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  나는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웃지 않겠습니다.


이건 바보 선언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고 세상을 사는 대단한 처세술입니다.


겉으로 똑똑해 보여서 손해 보는 것보다는 바보처럼 보여 사람들을 편하게 하기에 주변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함께 어울리며 사는 겁니다. '원세'의 처세죠.


세상을 살며 함께 하는 사람을 고르는 것과 밭을 매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래서 경험 많은 농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밭을 맬 때는 한 번에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설렁설렁 세 번은 매야 잡초를 모두 뽑을 수 있다.”


사실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빈틈’이 있는 것이죠. 그걸 억지로 막거나 감추려들면 오히려 다른 불상사가 생깁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빈틈이 없으면 오히려 무너집니다. 그래서  ‘과칙위붕 過則爲崩’이라는 말이 생긴 겁니다.


고기도 물이 너무 맑으면 못 살고, 사람이 너무 살펴도 주위에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죠.


‘사람의 빈틈’이나 '인생의 빈틈'은 지식으로 메우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빈틈은 사랑과 배려로 메울 수 있습니다.  세월이 알려주는 교훈이지요.


성공하는 사람 중에는 오히려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공부시킨 사람보다는 부모가 빈틈을 보여준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를 계획과 규제보다는 아이를 믿고 사랑으로 길렀기 때문에 달라진 거죠.


'실수 마케팅'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유명인이나 대통령 후보가 실수를 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을 느껴 더 좋아한다는 것이죠.  외국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유력 후보가 커피를 엎지르자 대중은 환호합니다. 오히려 더 인간답다고 느끼는 거죠.  그렇게 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보 노무현'입니다.


사람의 빈틈은 약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여백입니다.

사람의 빈틈은 다른 사람이 올 수 있는 설렘과 기대의 자리입니다.


사랑이 오고 사람이 올 수 있도록 당신의 빈틈을 그대로 두세요.  


그래야 세상사는 맛도,  세상사는 멋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젊어서는 '빈틈없이'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나와 주변을 모두  힘들게 했다는 것을,  참으로 늦게 알았습니다.


빈틈없이 사는 것보다는,  빈틈이 조금은 있게 사는 게  인생의 여유를 갖게 합니다.

   

세월이 흘러서 일까요?

인생을 허술하게 살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빈틈을 보여주는 사람이 저도 더 마음이 갑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여백 있는 사람과 만나 부탁도 하고 술도 마시고 사랑도 하고 싶으니까요.


자신의 빈틈을 받아들이는 '넉넉함'을 가지세요.

그래야 나에게도 남에게도  넉넉해집니다.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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