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언제쯤?
‘꽃밭‘
33세 7번째 퇴사를 결정짓던 밤.
또 한 번.
풍선껌 마냥 부풀었던 기대감이 푹 사그라들었다.
지금 이 나이까지도
내가 이렇게 못 미더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첫 면접에서 나를 보는 그 어린 동료의 눈빛은 마치
“제 자리를 빼앗긴 것 마냥“ 날이 서 있었다.
속으론 그녀의 눈치를 한껏보며,
겉으론 어느 새 무르익어가던 그 날. 그 회색빛 면접.
여자들의 속일랑 알리 없는
공돌이 출신 남자 대표는
그간 꽃밭에만 굴렀던 내가 어여 자신의 회사로 와
꽃밭으로 만들어주길. 한껏 기대하고 있는듯 했다.
출근 첫 날. 이 어린 동료애에게서
”대표님이 너무 맘에 들어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너의 의지는 전혀 없었구나’ 하며
하마터면 그 애를 위로할 뻔 했다.
이제 막
자기 업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떴을 3년차
나보다 6살 어린 그 친구는
알맹이 하나 없이 치기에 어린 눈으로
‘논리’와 ‘구조’를 따져가며
겉으로 보기에 요란한 일들만 해댔다.
약 6년 전 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6년 전 나는.
머리에, 가슴에 뭐 하나 갖춰진 것도 없이.
치기에 어려 유세나 부려댔다.
마치 팀의 성공이 내 덕인양.
목소리를 한껏 키웠고, 진심 없는 칭찬에 목말라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와 닮아있는 이 어린 동료애의 환심을 사고자
진심 없는 칭찬을 남발하며,
애써 웃음꽃을 피워드렸다.
향기 하나 없는 꽃밭이 만들어지는 순간.
“더는 이렇게 안 된다”
내가 만든 이 향기 없는 꽃밭에서
더는 구를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
어린 동료를 보며 말했다.
“너는 좋지만 회사가 별로다. 나는 나가겠다.
너는 최고 똑똑하니 내가 없어도 잘 해낼 거다.”
그 어린 동료의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라며 거짓을 고했다기 보단, 숨쉬듯 단호하게 무례한 말을 내뱉는 어린 친구가 날 또 찌를까봐.
겁이 나서 애써 그녀를 또 달콤하게 옭아맸다.
나는 끝까지 비겁했다.
사실은 아닌 척 해도 그 어린 동료가 참으로 불편했다.
내면에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그 단호한 무례함이,
숨쉬듯 무례함이 마치 6년 전 나와 너무 닮아서.
6년 전 목소리만 큰 오만한,
속은 텅텅 빈 내가 아무 소리나 내었을 때.
왜 딱 지금의 나만한 선배가
나에게 더 마음을 안 주고 입을 닫아버렸는지.
왜 그 선배에 대한 나의 같잖은 애정이
한사코 돌아오지 않았는지.
지금 이 어린 동료를 보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도 입을 닫아버렸다.
애석하게도 이 어린 동료는
무심코 튀어나오는 모난 말들과 달리
속은 물컹한 친구라,
내가 무어라 무어라 꾸짓으면
그것을 또 받아들이고 고쳐낼 걸 알면서도.
내가 뭐라고...
나라는 비겁한 이는 차마 무어라 꾸짓지 못했다.
내가 보낸 애정 담긴 한 마디에 책임감이 따라올까봐.
그 책임감이라는 실선이 또 끈끈하지도,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은 애매한 긴장감으로 어린 동료와 나를 묶어버릴까봐.
그렇게 되면, 애매한 실선으로 엮인 우리 둘 사이에
번거로운 일이 생길까봐.
그래서 나는 그 시절 내 선배가 그랬듯.
이 아이와 엮일뻔할 그 선을 반듯하게 잘라내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또 도망쳤다.
내 짧았던 어린 동료가 상상도 못하게 비겁한 나는
스스로 찌르며 또 그저 도망쳐버렸다.
또 다른 꽃밭을 찾아 나서겠지만,
만들러 나가 보겠다만.
내 씨앗이 아직도, 알맹이가 꽉 들어차지 않았는데,
농부가 그저 뿌린들 향기가 나겠느냐만은.
그래도,
[덧붙임]
가만 들여다보면.
그 애의 속은 모나지 않았다.
자신을 고집스럽게 잡아두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기에 여기저기 구르고 깨지며 반질반질해질 것이다.
지금 그 상태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아.. 내가 오만했었구나... 알게되겠지.
아쉬운 건 하필 그 애의 인생. 그 오만한 타이밍에 내가 겹쳐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고
감사한 건, 그 애의 그 타이밍 안에서 나는 내 지난 날을 돌아보았으니. 이런 글이 한편 나왔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중에 좋은 곳에서 보자”
이 마지막 인사만큼은 진심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