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홀린 듯 똑똑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정신 상태
흐릿한 미래
막연한 내일
가려진 목적
나는 미몽 속에 있었다.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디쯤 와 있는 건지
이 연극 같은 삶은 언제 끝날지…
제자리만 맴돌았다.
생산성, 자기계발,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나를 피곤하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일기를 쓰고,
“이제는 괜찮겠지” 했지만
다음날이면 다시 흐려지는 나날.
그때,
내게 스승이 찾아왔다.
⸻
그는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어떤 질문을 안고 있는지를 ‘보게’ 해주었다.
“나는 얼마나 멀리 가고 싶은 사람인가?”
“나는 누구에게서 배워야 하는 사람인가?”
이 문장들은 그가 만들어준 문장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내 안에서 이미 생겨나 있던 질문을
나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내가 필요했던 건
누군가의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내 질문을 꺼내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
스승이란,
내 안에 숨어 있던 질문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이다.
⸻
스승은 유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아파본 사람,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깊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의도보다
함께 걸어가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무너지던 날,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내 표정에서 모든 걸 읽어냈다.
“지금 괜찮지 않죠.”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읽은 게 아니라,
읽힘을 당했다.
⸻
한때 나는 책에서 해답을 구했다.
많이도 읽었다.
좋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허전했다.
왜일까.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됐다.
⸻
1. 책은 ‘답’을 줄 수는 있어도,
‘내 질문’을 보게 하진 못한다.
책은 정리된 지식이다.
그 안엔 지혜도 있고 통찰도 있다.
하지만 책은 묻지 않는다.
지금 네가 어떤 벽에 갇혀 있는지,
지금 필요한 게 지식인지, 위로인지 구별하지 않는다.
책은 한 방향이고,
스승은 쌍방향이다.
⸻
2. 책은 나를 관찰하지 않는다.
내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지금 일상이 무너졌구나”를 읽어낸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설명이 아닌 울림을 받았다.
책은 잘 설명하지만,
나를 ‘읽어주진’ 않는다.
진짜 스승은
나를 책처럼 읽어내는 사람이다.
⸻
3. 책은 머물지만, 스승은 걷는다.
책은 완성된 결과물이다.
편집되어 있고,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스승은 과정 속에 있다.
넘어지고, 고민하고, 다시 일어선다.
그가 흔들리는 걸 보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아, 나도 이 길을 계속 가야겠구나.”
⸻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책은 등불이고,
스승은 방향이다.
책은 길을 밝혀주지만,
스승은 그 어둠 속에서 함께 걷는 사람이다.
⸻
그 이후로
나는 나만의 스승들을 만났다.
어떤 시기엔 사람이었고,
어떤 시기엔 책이었고,
이제는 내 안에 있는 기준이 되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내 안에서 조용히 말해주는 소리.
“그건 너답지 않아.”
“지금은 조금 멈춰도 괜찮아.”
“이게 맞는 방향이야.”
그 작은 속삭임이
이제는 내 다음 스승이다.
⸻
어느 날,
나는 스승을 따라 하나의 작은 행동을 시작했다.
복잡한 계획이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 글을 쓰는 것.
매일 나를 위해 계단을 오르는 것.
미몽 속 랜턴 같았다.
작은 빛 하나.
그 랜턴을 들고
살짝 발걸음을 옮겼더니
어라,
어느새 주위가 환해졌다.
⸻
나는 이제 안다.
질문은 멈추는 지점이 아니라,
걸어가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완성된 책이 주지 못했던 것을
스승은,
그리고 질문은
내게 천천히 가르쳐주었다.
⸻
여러분 지금,
무슨 질문을 안고 살아가고 있나요?
그 질문을 스스로 꺼내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미몽을 벗어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