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되는 무기력 뒤에 숨은 구조
계단을 오르고 난 뒤,
묘한 감각이 남았다.
그 전엔 분명히 안 될 거라고 여겼던 일이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야.”
“나는 작심삼일이 체질이야.”
그런데 막상 몸을 움직이고 나니
그 말들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된다고 믿어왔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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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한계가
현실이 아니라
오래된 믿음에서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문제는
그 믿음이 꽤 논리적이라는 거다.
“예전에 해봤지만 실패했잖아.”
“나는 꾸준함이 부족한 사람이야.”
“그렇게 열심히 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 말들은
겉으론 나를 위로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를 아주 좁은 유리병 안에 가둔다.
그 안에서 나는 움직인다.
사는 것 같지만,
멀리 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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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무서운 건,
그 유리병이 외부가 아닌 내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엔 외부에서 주어진 압력 때문이었다.
세상은 말한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해.”
“더 나아져야 해.”
“멈추면 뒤처져.”
이런 말은 자극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천천히
나를 압박하는 구조가 된다.
처음에는 나아지기 위해 달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들을 ‘해야만 하는 말’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게 쌓이면 결국
자기 존재에 대한 압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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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는 의외로
우리의 한계를 뚫기 위한 말에서 시작된다.
“가능성은 무한하니까 멈추면 안 돼.”
“나는 더 나아져야 해.”
이 말들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 말이 내 안에서 어떤 감각을 일으키는가다.
그 말을 떠올렸을 때
몸이 긴장되는가,
아니면 안쪽에 공간이 열리는가?
긴장된다면,
그건 ‘나에게 쏟아진 말’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공간이 생긴다면,
그건 ‘내 안에서 피어난 말’일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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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는 아주 크다.
압박은 ‘해야만 한다’는 말에서 오고,
원동력은 ‘하고 싶다’는 감각에서 온다.
둘 다 비슷해 보이지만,
삶의 궤도는 정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