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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계탕 Aug 16. 2024

얼어죽을 1억도 없는데 결혼식은 무슨?

노웨딩 노웨딩 노웨딩 그 이유는 3가지.


나 32세

남편 31세


나 홀서빙 직원 겸 프리랜서 작가

남편 중소기업 팀장

둘이 합쳐 월수입 얼추 800만 원


나 모은 돈 7000만 원

남편 모은 돈 2000만 원

도합 1억 안 됨


결혼 후?

1.5룸 오피스텔 월세로 살 예정

보증금 4000만 원 이하

월세 약 100만 원


뭐 아파트?

2-3억씩 모은 돈?

부모님 지원?

그런 거 없다.


늦게 사회생활 시작해

이제 겨우 월급 받은지 1년 조금 넘은 남편은

그 특유의 성실함 덕에 벌써 팀장 자리를 꿰차고

내가 2년 걸려 모은 돈 2천만 원을

1년 안에 모아 가지고 왔다.


내 사회생활 경력은 어언 8년차

남편은 이제 겨우 1.5년차..?

이 사람이 6년 뒤 나와 같은 연차가 되었을 때

어떻게 성장해있을지 상상해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그가 부끄러워하는 그의 현재값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래 그럼 이제,

결혼을 해볼까?



“식은 올리지 말자”


흔쾌히 알겠다는 그의 대답에 마음이 놓인다.

식을 안 올리는 이유?

너무 간단하다.


올려야 하는 이유가 딱히 없고

안 올려도 되는 상황이 공교롭게도

자-알 갖춰져 있기 때문.


그 상황을 3가지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1. 부모로부터 지배받는 삶에서

'완전히' 벗어남.


경제적으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양가 부모님.

애석한 건 양가 모두 홀어머니라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경제적 연조가 완전히 끊겼고,

10원 한 장 받기 보다, 차라리

10원 한 장 드리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보니 “식을 올리지 않겠다“는

당사자들의 결정에

‘허락’이 아닌

‘이유’를 묻는

‘존중’이 딸려왔다.


만약 당신이

부모로부터 무언가 받고 있으며,

추후 더 받는 것을 기대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은 절대로 정신적인 독립을 이룰 수 없고,

결혼과 출산 그 모든 과정에서

원가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즉, 부모의 경제적 원조와

정신적 지배는

무조건 한패다.


하나를 버리고 하나만 취할 수 없다.

무조건 두개 다 떨쳐내거나

그냥 같이 가거나.


10원 한 장 기대하거나 의지한다면

독립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속 편하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연대하고

정신이 지배받는 삶을 살고 있기에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원조를 원하면서

정신적 독립을 바라는 건

완벽한 모순이라는 점만 알아두자.


(결혼식 여부도 부모의 의견에 말미암을 것..)



2. 아내의 (진짜 친한) 친구 수 3명 이하


내게는 당장 간을 이식해주어도 아깝지 않을

친구 2명이 존재한다.


그외 친구들은

그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나도 그들이 필요할 때 그들을 찾는다.

그 도움은 눈에 보이는 도움 외에도

위로, 공감, 경청, 즐거움을 나누는 것까지

모두 포함이다.


헌데 이 위로와 공감

경청, 즐거움 없이도

서로가 너무 당연하고

가족처럼 아끼는 이상한(?) 인물 2명을 일컬어

나는 ‘진짜 친구’라고 명명한다.


그리하여 365일 마음을 쏟는 진짜 친구

단 2명뿐인 나는,

그 큰 웨딩홀에서

진심으로 마음을 써줄 진짜 친구

2명 내외라고 짐작하는 나는,


그 큰 웨딩홀이 필요가 없다.


어쩐지 남편 측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노웨딩’을 부러워하는 분위기다. (이 무슨?)


어쩌면

결혼식을 크고 작게 만드는 가장 큰 변수는

아내 측의 친구 수와 분위기가 아닐까..?



3. 특별한 날에 대한 감동의 역치가 높지 않음.


“그럼에도 특별한 의식은 필요하다.

인생에 즐거움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몇몇 조언들이 있었는데,

나를 잘 아는 진짜 친구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


특별한 날에 대해서만 감동의 역치가 너무 높으면

반대로

그저 그런 하루가 밍숭맹숭해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책과 글이 내 세상에 나타나기 전

도파민이 더 크게, 팡팡 터질 일만 찾아

나를 잃고 돈도 잃고 헤매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때의 나라면 주저 없이

“결혼식...!!!!”을 외치며 헐떡 거렸을 테다.


지금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감동 요소를 보는 눈이

아주 조금 생겨버렸다.


당신의 라이킷 하나.

그 감동을 위해

부단히도 써내려가는 글.


이제 안다.

손으로 직접 빚어내는 작은 감동이

화려한 것들보다 훨씬 더 오랜 여운을 남긴다는 것을.


'구태여 특별하게 만든 의식'이란 건,

정신의 센서가 무딜 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정신에 고도화된 섬세한 센서만 장착되어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날도 특별하게 만들어볼 수 있을 터.


테이블에 놓인 꽃 한송이가 만드는

기분좋은 하루처럼?


정신이 예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걸 들이밀어도

무딘 칼에 썰리는 무마냥 감흥이 없다.




돈이 없고 열등감이 강해서

노웨딩을 하고 싶다는

의견도 많다.


사실 열등감으로 노웨딩을 선택하면

노웨딩이 아닌 ‘나중웨딩’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보여지는 것들에 자유롭지 못하면

내가 선택하는 그 어떤 것에서도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기 어렵다.


앞에서 가타부타 멋진 말로 지껄였지만

결혼식을 안 하는 이유를 진짜 꼽자면

돈이다.

그냥 아깝다.


남편이, 내가,

갖은 시행착오 겪으며

공들여 만든

종잣돈.

그 돈을 그렇게 태워버리는 건

이래나 저래나 용납하기 어렵다.


이 종잣돈이 우리의 5년 후를 어떻게

만들어줄지 눈에 훤하기에.


지금 그저 이 젊음 자체로도 이쁠 때

1.5룸 월세도 아무렇지 않을 때

이때가 절호의 기회다.


지금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곳에다

돈을 쓰는지에 따라


나중에 진짜

그 나이에 어울리는 것들을 취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다만 가장 젊을 때

사진은 좀 찍어놓는 걸로.^^




요즘...

흔히 보이는 30대의 삶과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몸 편한 회사를 때려치고 홀서빙을 하질 않나.


달랑 7천 모아놓고 결혼을 약속하질 않나.


팔십사제곱미터 아파트 전세도 아니고 15평도 안 되는 오피스텔 월세....


노웨딩....


결론은

‘너무 좋다’


‘기준에 맞춰가는 삶‘에서

‘내가 원하는 삶‘으로

점차 틀어져가는 이 모양새가.



[덧붙임]

남편을 선택한 이유


실컷 자다가도 알람이 울리면 ‘벌떡’ 일어남.

단 한 번도 뒤척인 적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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