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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계탕 Aug 19. 2024

브런치는 예술병 걸린 사람들이 미사여구 남발하며 친목을

다지는 곳?

이라고 누가 써놨던데

남편이 읽어준 거라 출처는 모르겠습니다만

기분이 썩









‘좋다.’


기름 쫩쫩

도넛이나 튀기고 있는

백화점 지하 1층 식품관 빨간 모자 아줌마한테

예술이라니..

미사여구라니...!


각설하고

병에 걸릴 거면 ‘예술병’이 그중 가장 나은듯 하고

친목도 ‘글로 다져진 친목‘이 그중 가장 나은듯 하다.



대체로.

살면서 후회와 반성이라는 키워드가 찾아올 때

혹은 ‘사는 이유’를 찾아 헤맬 때

좀 읽을만한 글이 탄생하는 듯 하다.


그러므로 제목 어그로와는 무관하게

후회와 반성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내 글을 쓰자”

생각하고 다시금 브런치에 발을 들인 순간

가장 먼저 한 일은


3년 전 쓴 그 낯부끄러운 글들을 지우는 것. 이었다.


타고난 리셋충인 나는

언제나,

지우고 싶은 흔적이 있으면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없애버리는

나쁜 버릇을 소환한다.


헤어진 직후 없애버리는

전화번호와 카톡 프로필을 필두로.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겠다며

시원하게 지워버리는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혹은 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며 지워버린

리멤버, 잡코리아 어플 까지도?)


잘 빠지던 몸무게에 변화가 없다며

홧김에 지워버리는 몸무게 입력 어플.


지금껏 먹은 배달 음식 주문 이력이 꼴보기 싫다고

다시는 안 볼 각오로 삭제한 각종 배달 어플들.


새 삶을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을 열겠다며

눈앞에서 치워버린 유튜브 시청기록까지.


(유튜브와 배민이 만드는

이 시대 환장의 콜라보 = 거북목 + 뱃살에 충격 먹고

다이어트 어플 깔고 새 삶을 기념하지만

또다시 유튜브 배민에 멱살 잡혀가는 무한궤도)



이번에는

3년 전 이 브런치에 쓴

그 어리숙한 글을 못내 참을 수 없어

싹- 다 지워버리고

3초 후련한 마음이 들었더랬다.


지난 날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염없이 ‘리셋’ ‘리셋’ ‘리셋’

리셋에 중독된 나는

언제나 눈앞에서 흔적들만 지우면

모든 것이 후련하고 명쾌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쿨감은 단 3초.

리셋 버튼을 누른 직후

단 3초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고


어쩐지 묵직하게 남은 잔여물들은

제대로 해소될 줄 모르고 엉성하게 엉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망쳐놓았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어리석은 짓을 해놓고 리셋하고

또 되풀이하는

머저리같은 사람이던가..?


애초에 그것들을 모두

어리석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래,


헤어진 직후 없애야 할 건

전화번호카톡 프로필이 아니었고


본업에 진저리가 나 때려치고 없애야 할 건

이력서포트폴리오가 아니었다.


살이 찌고 내가 싫어질 때 지워버려야 할 것 또한

‘애먼 어플들’이 아니었을 터.


빠른 행동보다

깊은 숙고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게 뭐든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리셋” 해버리는 자기기만을 하면 할수록

“과거”의 나는 부정당하고


“인생”을 이루는 퍼즐 조각은

“후회와 반성, 깨달음”으로 모양을 갖춰

“서로” 얼기설기 붙어

“큰 그림“으로 만들어져야 하거늘


“내 퍼즐들은“ 하나같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뾰족한 상태” 그대로 남아

“뾰족하게” 나를 찌를 뿐이었다.

(도무지 큰 그림이 완성될 틈이 없다.)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3년 전 쓴 글을 지우고

마치 새롭게 가입한 사람인양

새글을 채워넣고 있는데....





3년 전 글이 보고싶더라.


지금과는 다를 텐데. 아니,

그때 그 부끄러운 걸 들여다 볼수록

옆에 둘수록

지금의 내가 더 와닿을 텐데.


결국엔

마주해야 한다.


왜 리셋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지.

왜 그렇게도 그 경험을 지우고 싶은지.

그 경험이 나에게 주는 게 도대체 무언지.

나는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미국에서 글솜씨로 꽤나 알아주는

경제 매거진 작가 모건 하우절이 말하더라


“40대가 된 성인은

10대 시절 무심코 새긴 타투가 부끄러워

시간과 돈을 들여 그 흔적을 지워낸다“


“사람의 인생은 늘, 이런식이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그렇게 지워내는 삶이 당연한 거라 여겼다.


아니다.


흔적에서 배우자.

왜 이런 흔적이 남았는지 알아내자.

이제 또 어떤 흔적을 새겨넣을지

생각하며 살자.


그러므로 이제 나는

내 글을 지우지 않겠다.

3년 뒤 이 글이 못내 부끄럽더라도,


예술병 걸린 사람이

미사여구를 남발하는 그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때 마주하겠다.

지금의 내가 남긴 조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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