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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Feb 01. 2024

커피 믹스 믹스 커피

건강 build up

대학 때부터였던 거 같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기 시작한 시점이. 그동안은 자율적인 삶이 아니었으니까. 서울로 유학을 오고 혼자 자취를 하면서 내가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우선 늘씬한 허리를 갖고 싶었다. 셔츠나 블라우스를 치마 속에 넣어 입어도 맵시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슬슬 붙기 시작한 살이 허벅지에서 허리로 올라오면서 상의 앞자락이 살짝 벌어지는 형상이 되었다. 특히 우리 고등학교 교복은 허리에 주름이 들어가고 거기에 벨트까지 해야하는 디자인이었는데, 배가 불룩한 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는 교복 상의 단추 사이가 살짝 벌어져있는 게 인증숏처럼 남아있었다. 


밥을 굶어 보았다. 밥 대신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밥을 대신하기도 했다. 자판기 커피가 더 복부 지방을 늘린다는 것은 그 후 2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밥 대신 식빵을 먹었다. 밥만 안 먹으면 체중이 줄 줄 았았다. 그러나 식빵으로 밥의 포만감을 대신하려면 한 덩어리는 통째로 먹어야 밥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요네즈를 바른 식빵의 맛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중독된 마요네즈 식빵을 끊어내는 일은 또 다른 추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 밥을 굶거나 먹지 않으면 역효과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밥을 굶고 참다가는 폭식을 하게 되고, 밥 대신 먹은 자판기 커피나, 마요네즈 식빵은 중독되고 점점 더 많이 먹게 되고, 게다가 체중 증가에 밥보다 더 치명적임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밥은 거르지 말고 규칙적으로 먹는 것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음을 깨달았다. 밥을 먹되 양을 평소 먹는 것보다 줄여서 먹고, 허기지기 전에 규칙적으로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했다. 뭔가를 추가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였다. 녹차 티백이 슬슬 등장하였다. 직장에는 커피, 프림, 설탕, 유자차, 녹차 이런 것들이 상비되어 있었다. 녹차가 체내 지방을 녹여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커피 No!. 유자차 No! 사무실에서는 오전, 오후로 녹차를 마셨다. 다행히 첫 직장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규칙적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양도 조절할 수 있었다. 오후 5시 퇴근이어서 이른 저녁을 집에서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군것질만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래도 늘 동기들 중에 내가 가장 통통했던 거 같다. 여기에 운동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동네 걷기, 줄넘기하기 등등. 


과자나 맛있는 빵이든 뭔가 단 게 먹고 싶어질 때, 커피 믹스 하나면 충분하다. 공부하다 집중이 안 될 때 믹스 커피 한 잔 마시면 답답했던 게 뻥 뚫리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오랜 경험으로 매일 믹스 커피 한 잔씩만 마셔도 한 달에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체중 1kg이 증가함을 깨달았다. 나의 몸으로 확인한 바 내게는 불변의 진리이다. 그래서 믹스커피가 집에 있으면 안 된다. 150개짜리, 250개짜리 큰 박스로 구입하면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 정말 꼭 마셔야겠다 싶을 때, 편의점에 가는 불편을 감수하고 떨리는 손으로 20개 들이 커피믹스를 사 온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 둔다. 최대한 덜 생각나도록. 오늘 마지막 한 봉을 타 먹었다. 그 사이 1kg가 다시 늘었다. 한동안 너를 멀리 하리라. 잊으리라. 너로 인해 증가된 1kg을 감량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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