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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Jan 08. 2024

보이지 않아도

김깜지

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13일이 지났다.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된 것인지 다섯 시부터 잤다가 이 새벽에 깨어난다. 여자들은 미서부를 달리고, 남자들은 깜지와 함께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집에 남았다. 남겨진 이들은 모두 내 손이 많이 가는 이들이어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이런 해방은 좀처럼 쉽게 주어지는 일이 아니다. 마음 굳게 먹고 출가했다. 

아들은 도통 연락을 하지 않고, 카톡을 남기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연락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중 그나마 내 말을 듣고 이행해 줄 남편에게 아들과 깜지에 대한 숙지해야 할 내용들을 알려주었다. 깜지가 걱정이었다. 엄마 껌딱지인 깜지. 혹시 또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을까. 시무룩하진 않을까. 여행 중 가끔 남편이 전해주는 소식은 아주 잘 지낸다는 것이다. 처음엔 나와 자던 방에서 혼자 자다가, 며칠 지나니까 남편 침대 옆에 눕더니 나중에는 내게 하였듯, 남편 다리를 자기 베개 삼아 베고 잔다고 하였다. 혼자 실컷 자다가 남편에게 와서 놀아달라고 하고, 밥 달라고 한다고 남편은 신이 나서 말했다. 깜지랑 놀아주는 것 귀찮아하는 줄 알았는데, 깜지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이 귀찮기보다 더 반가운 듯하였다. 

돌아와 보니 아들은 나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기 몸 툭 치는 것도 싫어하고 잔소리는 일도 못 들으면서 엄마의 체취가 그리웠는지. 이런 해석을 아들은 질색하지만, 결과적인 그림은 그러했다. 아들도 그 사이 깜지랑 더 친해졌다. 깜지가 우리 집에 온 지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처음에는 우리가 집을 비우면 자기가 혼자 버림받는다 여기고 불안해했는데, 이제는 집은 자기 홈그라운드라는 믿음이 굳건하다. 그리고 식구들이 외출하거나 여행을 떠나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도 엄마가 다시 돌아올 거라 믿고 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생각했던 기간보다 길었던가 보다. 남편 옆에서 잘 자던 깜지가 이불에 쉬를 했단다. 이런 일이 있으면 가족들은 깜지가 혼날까 봐 걱정한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던 그날 이불 빨래 하면서도 남편은 깜지가 밉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깜지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자기가 아빠 볼 면목이 없어서인지 그날 이후로는 오빠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잤다고 한다. 그때부터 오빠만 신났다. 

이번 여행도 역시 전투적이었다. 집에 자주 연락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끔 딸들과 함께 깜지 생각이 나서 영상 통화를 하면, 자다가도 '깜지야' 부르는 소리에 눈이 동그래지고, '네에~' 대답을 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자기를 보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 몸을 뒤집어 하얀 배를 드러내고 기지개를 켜는 이쁜 짓을 을 했다. 

깜지의 기지개 이쁜 짓

여행에서 돌아오자 나에게 다정스레 뽀뽀를 했다. 깜지 뽀뽀는 비싸서 하는 척하다가도 터치는 하지 않는데, 정말 보고 싶었는지 진짜 뽀뽀를 했다. 그날 이후로 아빠와 오빠는 다시 찬밥 신세가 되었고, 깜지는 뜨거운 구들장 위에 녹아내리는 엿가락처럼 내 다리에 철퍼덕 누워 내가 꿈틀거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적당이 무거운 깜지의 몸이 닿아 있을 때는 평안이 깃든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첫 예배를 드리는 날 모처럼 두 사람의 찬양이 반가웠는지, 깜지가 연신 따라 부른다. "그래 그거지, 두 사람 함께 노래 부르는 거 보니 좋네."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노래 따라 부르는 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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