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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Dec 10. 2023

눈치 九 단

김깜지

그저께 나 때문에 한 주 앞당긴 종강파티를 했다. 교수님과 청강생과 수강생이 느린 마을에 모였다. 청강생이 수강생보다 많다. 갑자기 원생에서 졸업생이 된 나는 실직한 이 마냥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그때 문득 청강해도 된다 하셨던 교수님 말씀이 떠올랐고 메일로 다시 한번 허락을 받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금요일마다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꽤 고된 시간이었으나 대학원 다니는 동안 배운 것보다 많은 내용을 배웠다. 또 대학원 다닐 때는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안하무인 태도에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서로 견제하느라 맘을 못 열다가 졸업생, 졸업 예정자, 재학생 등 다양한 상황 그리고 청강생이라는 지위가 사람의 마음을 느슨하게 하였는지, 수업 끝나고, 전, 치맥, 부대찌개, 보쌈, 막걸리, 국수, 떡볶이 등등 메뉴를 바꿔가며 참새처럼 방앗간에 들러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혹 교수님도 함께 했고, 우리는 늘 모두 1/n으로 계산했다. 낼모레 미국에 있는 딸들과 일정을 맞추다 보니 종강까지 수업을 못 듣게 되었다. 교수님께 미리 말씀드려 한 주 앞당긴 종강파티를 하자고 제안했고 아쉬움으로 함께 하셨다. 

 

어제는 28인치 캐리어 두 개를 펼쳐놓고 짐을 쌌다. 그동안 생각날 때마다 가져갈 것들을 찾고, 구매하여 딸아이 방에 쌓아 놓았고 그것들을 무게와 성질(깨지기 쉬운)등을 고려하여 두 캐리어에 분배하여 담았다. 큰 가방을 펼쳐놓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챙겼더니 깜지가 눈치를 챘다. 나를 따라다니며 발꿈치를 살짝살짝 문다. 속상하다, 화났다, 싫다는 의사 표시다. 20여 일 내가 집을 비우면, 엄마 의존도가 높은 남편과 아들 그리고 깜지만 집에 남는다. 그들끼리 어떻게 살 지 걱정되지만, 깜지도 그렇고 이제 다들 성인의 나이에 이르렀으니 잘 해내겠지 스스로 위안해 본다. 


깜지가 어렸을 때, 우리가 여행 짐을 쌀 때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그저 부산스러움에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펼쳐놓은 가방에 들어가 놀다가, 갑자기 온 식구가 나가고 문이 닫히고 혼자 남겨진 것을 깨닫고는 집안에서 혼자 울어댔다. 너무 울어서 다시 문 열고 들여다보면, 헝겊 강아지 인형을 찾아다 놓고는 '쥐 잡아 놓았는데 어디가?' 이러면서 울고 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깜지야 우리 한 밤 자고 올 테니 집 잘 보고 있어.' 하고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꼭 이불에다 쉬를 해놓았다. 다른데도 아니고 이불에다. 에휴.... 그래도 마룻바닥이 아니라 다행이라 위로 삼았다. 이불은 빨면 되지만, 마룻바닥은 냄새가 배면 어찌할 수 없으니. 혼자 남겨진 게 슬퍼 울다가 이불에다 싼 건지, 방 밖에 나오기 무서워서 이불에다 실례한 건지. 자기 두고 갔다고 약 올라서 한 번 당해봐라 하고 심술을 부린 건지 추측만 무성할 뿐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불에 쉬하는 게 의사 표현의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컴퓨터로 작업하느라 깜지의 요구에 응해주지 않으면 이불에 올라가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들어가 보면 어정쩡한 자세로 뭐라 하는데, "나 여기 쉬한다." 하고 나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오! 노! 안돼~" 외치며 쫓아가면 약 올리듯 도망간다. 심술이었다. 이후로 여행 갈 때는 이불 위에 방수 비닐을 깔아 놓고 간다. 깜지가 좋아하는 면 이불 위에 쉬게 하고 싶지만, 뭐 비닐도 깜지가 좋아하는 촉감이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가족이 집을 비우다가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니, 이제 깜지는 식구들이 떠나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혼자 집에 남아있으면 자기가 버려졌다 걱정하는 눈치였는데, 이제는 집이 제일 안전하고 여기 있으면 식구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우리가 나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나나 아빠가 아닌 엄마가 심상치 않다. 가방도 큰 거 두 개나 싸고, 엄마가 짐을 싼다. 깜지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는 정말 적의를 품지 않고는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강도 조절에 실패해서 아무 때나 세게 물고 날카로웠는데, 이제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이빨과 발톱은 강도가 약하다. 애정으로 무는 것이 느껴진다. 서운함 밑에 애정과 신뢰가 깃들어 있다. 암튼 깜지야 엄마 없는 동안 아빠랑 오빠랑 사이좋게 잘 지내라. 누구한테 누구를 부탁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깜지한테 부탁하는 게 제일 낫겠다. 오빠랑 아빠 잘 구워삶아서 간식도 꼭 얻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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