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에서 묵었던 집 화장실 벽 한 부분은 색색의 유리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게 너무 멋져 사진을 찍어 왔는데(나중에 나도 집을 지으면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남편이 우리 집 주방 작은 통창에 이런 그림을 그려 붙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역시 아마추어다운 생각이다. 남편은 간단히 종이에 그려 테이프나 풀로 붙이자 했다. 그러나 열심히 그린 그림을 그렇게 값싸게 붙이고 싶지 않다. 보기에도 좋지 않을 듯했다. 풀로 붙이면 맘에 안들때 떼어내기도 어렵지 않은가. 여간 지저분한 일이 아니다. 나는 천으로 단순한 커튼을 만들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천에 그림을 그려볼까 해서 오래전에 구입해 둔 광목천이 있었는데,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왠지 꼭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의지가 불타올랐다. 창의 가로세로 치수를 측정하고, 종이에 커튼 봉이 들어갈 구멍과 시접 등 사이즈를 적었다. 그리고 천과 도면을 가지고 동네 단골 세탁소를 찾아갔다. 아저씨께 그림을 그릴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시접을 너무 많이 잡지 않기로 하셨다. 생각만 하다가 천을 구입하는데도 몇 년이 걸렸는데, 천을 구입한 후 여기까지 실행에 옮기는데 또 몇 년이 지났다. 참 게으름에 한탄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발을 내디딘 스스로가 여간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아저씨는 하루 만에 예쁘게 작은 커튼 두 장을 완성해 주셨다.
그걸 가져와 바탕 작업을 하는데 또 며칠이 걸렸다. 아교포수를 하고 널었다. 광목천이 두꺼워 마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떻게 그릴까. 무슨 물감으로 칠할까 어떻게 칠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이일 저일, 심난한 일, 명절을 보내니 또 한 달이 훅 지나갔다. 그리고는 파스텔로 밑그림을 그렸다. 녹황색 파스텔인데 전체적인 그림 분위기에 꼭 맞는 색상으로 모양의 테두리가 그려졌다. 작업 초기에 이런 느낌은 왠지 이 작업이 잘 나올 거라는 기대감을 상승시킨다. 앗. 파스텔로 본을 먼저 그리고 아교포수를 했다. 그래야 본이 지워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아교포수를 붓으로 하지 않고 분무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거라 반신반의 실패할 확률이 높았지만 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말려두고 또 2주가 지났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채색에 들어갔다. 아교포수가 아무래도 약했는지 물을 많이 섞은 물감은 번지는 곳이 좀 있었지만, 그런대로 자연스럽게 놔두기로 했다. 바탕은 천의 색이 아이보리, 베이지 색 중간이어서 작품이면 모르겠지만, 커튼으로 사용할 거라 바탕은 칠하지 않기로 했다. 매끈한 광목이 아니고 우둘두둘한 광목이어서 채색이 더디다. 그러나 느낌이 좋다. 종이에 마커 작업, 한지에 먹, 순지에 분채 채색 이런 것들과 작업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바탕지의 느낌과 그것에 안료가 스며들때의 속삭이는 듯한 소리. 작가마다 작업할 때 좋은 느낌의 재료가 있다. 이것도 작가의 에너지와 재료의 에너지가 잘 공명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천에 그리는게 처음이라 물감 조절이 잘 안되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위안하며. ㅎ
주방에 외창에 사용할 커튼을 생각했으나, 천의 한 쌍이 만들어질 사이즈여서 두 폭의 커튼을 만들었다.
재봉질 하는 아저씨도 서툴었는지 가장자리 천이 울었다. (처음이니까... 위로해본다.)
부엌 창에 달아보니 너무 답답했다. 마침 정남향 남편 책상앞 창문에 커튼이 없고, 사이즈가 그곳에 딱 맞는다.
물론 길이가 짧은데, 살짝 밖을 구경할 수도 있고, 바람도 솔솔 통할 수 있는 그런 구멍이 생겨 남편이랑 나는 아주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