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부초음파 결과가 나왔다
지난주 정기 검진 결과가 나왔다. 혈관종은 5mm 정도 작아졌고, 간암 수치도 12에서 9로 낮아졌다고 하였다. 매년 설 명절 직후 검사를 예약해 놓으니 일 년 동안 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상한 것, 유통기한 지난 거, 탄 거, 약물 남용 등을 조심하게 된다. 좋은 일이다. 이런 검사는 종합병원에서 받고 있지만, 본디 나는 종합병원, 대학병원을 즐겨 찾지 않는다. 마트보다는 백화점, 동네 병원보다는 대학병원을 선호하는 지인은 내가 졸업한 대학 병원에 가면 종합 건강 검진 동문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걸 모르고 이용하지 않는 내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동네 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큰 병원에 가면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낭비라고 생각한다. 동네 병원을 이용하다가 정말 필요할 때 큰 병원을 이용하면 된다. 보통 좋은 동네 병원은 꼭 필요할 때 종합병원에 가서 어떤 검사 또는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때로는 예약도 해준다.(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진료 과목마다 단골 병원이 생겼다. 내과, 가정의원, 한의원, 치과, 피부과, 안과. 나에겐 많은 복 중에 좋은 의사 선생님 복이 있는 것 같다.
ㅇㅅ 가정 의원
결혼 5년 차 남편 학교 가까이로 이사를 했고, 우리가 이사한 후 일 년이 지났을 무렵, 아파트 상가에 가정의원이 새로 들어왔다. 당시 가정의학과라는 새로운 과명이 등장한 즈음이었다. 내심 반가웠다. 감기야 내과 소아과 가면 되지만, 그 외에 무슨 병원, 어느 과를 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은데, 그런 때마다 난감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이 아프면 일단 이 병원에 들러 물어보면 되겠다 싶었다. 정말 의사 선생님은 의사 맥가이버였다. 그분은 피부에 관련된 부분을 특히 잘 진료해 주었다. 눈다래끼도 해결해 주고, 귀를 막은 귀지도 해결해 주고, 티눈도 해결해 주고, 무좀도 선생님이 처방한 약으로 한 번에 치료했다.(물론 6개월 간 선생님 지시대로 약을 꾸준히 먹은 결과이다. 남편은 자기 맘대로 약을 먹었다 멈추었다 해서 지금까지 무좀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후 우리가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강남에는 돈벌이가 되는 치료만 하는 병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작은 화상이 있거나, 알레르기로 인한 피부 트러블이 생겨 가면 피부 클리닉 손님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안과는 돈벌이가 되는 진료 환자만 친절하게 대하고 다른 진료 환자는 홀대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병원이 많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는 조금 멀지만 그래도 예전 살던 곳 이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강남으로 이사한 것도 알게 되었고, 먼 데서 온다고 더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그렇게 의사 선생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한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갔다.
허리 디스크 터지다
그러던 중 대형 사고가 터졌다. 결혼 전부터 남편은 허리가 자주 아팠다고 했다. 그럼 몇 시간 쉬면 나았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허리 아픈 빈도가 잦아졌고, 한 번 아파 누우면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어느 겨울 설명절이라 시댁에 가는 밤, 시댁 근처 길에서 차가 눈 위에서 미끄러졌다.
"어 어 차가 미끄러진다."
서서히 미끄러졌으나 제어가 안되었고, 그대로 앞에 있는 전봇대를 들이받아 멈추었다. 너무 천천히 미끄러진 거라 차도 우리도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남편은 그 충격에 허리가 많이 상했던가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오더니 한 달 동안 누워있어야 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우리는 길건너에 있는 ㄱㅊㅅ 정형외과를 찾았다. 그곳 의사 선생님은 입원실도 있는 개인병원치고는 꽤 큰 병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꽤 꼼꼼하고 정확하게 진찰하는 나름 유명한 분이었다. 지금은 연세가 들어 입원실을 없애고 진료만 본다. 그분은 남편 허리 디스크가 터졌고,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병원 말만 믿고 디스크 수술 하기는 어려워서 진료결과를 가지고 다시 ㅇㅅ가정의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하는 게 맞다고 하면서, 정말 무지한 우리들에게 신경외과 수술과 정형외과 수술의 차이와 회복 속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직장 있는 남편이 최대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신경외과 수술을 권했고, 그러한 수술을 잘하는 병원을 소개해주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큰 수술이었던 그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고, 남편은 정상인보다 건강한 허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장애등급을 받을 수 없음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case by case이다. 병원 때문에 애 먹는 이웃 아기 엄마에게 연세가정의원을 소개해주었더니 허름한 병원에 실망한 듯했다. 그러니 누구에게 뭐 좋은 걸 소개해주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각자 나름의 좋은 병원을 찾고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가족들 건강관리에 유용함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우리 집 주치의
한 번은 어지럼증과 미미한 한쪽 마비 증세가 있어 의사 선생님께 상담했다. 친정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나도 걱정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삼성 병원에 이 분야 전문 의사 선생님께 바로 진료를 예약해 주었다. 이런 특급서비스는 늘 있는 일인지, 특별한 경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예약하러 가는 수고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별일 아니었다. 아이들이 미국으로 유학 갈 때 필요한 예방접종과 예방접종 기록 증빙서류를 의사 선생님은 가족 일처럼 기뻐하면 해결해 주셨다. 여기저기 흩어있는 자료를 찾는 법도 가르쳐주셨다. 한 번 꽂히면 모든 병에 한 가지 약만 고집하는 남편과 부부싸움 하다가 이 병원에 찾아가 의사 선생님에게 상담한 적도 있다. 의사 선생님은 남편 편을 들어줬다. 그래야 할 거 같았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 선생님으로서 얼마나 난처하고 어처구니없었을까. 그렇게 우리 가족의 건강진료 기록은 이 병원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무튼 모든 기록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기록을 살피면 의사 선생님은 우리의 많은 의료기록 정보를 총제척으로 기억해 내신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주 발병하는 병을 알고, 또 그 병에 대한 더 좋은 치료법을 사용해주기도 한다. 이런 관계는 의사나 환자에게 유익하다. 언젠가 연세가정의원 의사 선생님은 우리 집 주치의 같다고 생각한 적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알게 된 건 그분이 주치의협회 회원이셨다. 믿고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우리에 대해 매번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간의 건강 추이를 다 이해하고 있는 분에게 진료받을 수 있는 건 가족 건강을 위해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의사 선생님도 나와 함께 나이가 들었다. 이 분이 아이들이 이룰 가정의 건강을 돌봐줄 수 없다. 아이들도 나처럼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또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