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존 모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문 Oct 13. 2023

1. 지워 나가기

인생노트

미국에 있는 큰 아이랑 오랜만에 페톡을 했다. 둘째는 지금 이 시각 동경에서 남자친구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큰 아이는 혼자 삼겹살로 저녁을 때우고 있다. 첫사랑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연애 휴지 중인 큰 아이는 결혼을 해야겠다 생각하지만, 생각뿐이라 했다. 지금 누군가 만나면 바로 결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만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데, 이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 더 좋은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고 하였다. 세상의 남자를 1위부터 마지막까지 한 줄로 줄 세울 평가 기준이 없는데도, 마치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완벽주의 평폐요, 첫사랑이 오래 지속되었고 유일한 사랑 경험인 것의 병폐다. 짧든, 길든, 다양한 교제를 경험했어야 했다. 누구를 만나고 있으면 다른 더 좋은 사람이 보인다고 했다. 문득 '세상의 절반이 남자야.'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지 세상의 절반이 남자이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관계있는, 아니 언젠가 나와 관계있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 주변에 있는 괜찮은 모든 사람이 나의 애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애인이 사람일 수도 있고, 나와 전혀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너무 가난한 사람, 너무 부유한 사람, 또는 백인우월주의자, 또는 성소수자일 수도 있다. 또 멀리서 괜찮아 보이지만 막상 만나보며 진상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시도하거나 누구를 경험하는 일도 없이 멀리 지켜보면서 나와 가능성 있는 사람들의 수만 늘여놓는 것은 허상의 사람들 속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 수렁을 자초하는 일이다. 


육아와 가사에서 허우적대던 내가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은 강한 욕구에 몸부린 치던 오랜 시간이 있었다. 학부 졸업 후 못했던 공부를 다시 해볼까 했는데, 아이 셋을 키우며 공부하려니 시간도 체력도 경제적 여건도 모두 만만치 않았다. 유치원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막내를 보며 보라매 공원 운동장 구석에서 어느 날 아침 엉엉 울고는 내 욕심으로 공부한다고 아이들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래도 나도 뭔가 할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고 싶었던지 파트타임 무보수 봉사를 찾았다. 고등학교 학부모 상담 봉사, 독서 지도, 도서관 명예기자, 교회 월간 소식지 인터뷰 기자 등등.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중에는 나는 왜 이것저것 시도만 하고 끝까지 가지 못할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봉사만 하고 있는 것은 치열한 현실에 부딪혀 내가 별거 아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될까 두려워서가 아닐까? 나는 맘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부딪혀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게 되면 좌절할 거 같은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 나이가 들어 50이 가까운 나이, 이제는 더 망설일 시간이 없어 보였다. 이제부터는 하나씩 허상인 가능성들을 지워나가기로 결심했다. 전에는 여건이 안돼서 못하는 거지, 내가 못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여건이 안 되는 것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지워나갔다. 대학원 갈 돈이 없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웠다. 공부하려니 배가 먼저 아파왔다. 긴장 때문이었다. 공부에 대한 두려움, 부담을 몸이 먼저 알았다. 공부는 나와 맞지 않다. 또 하나 지웠다. 글 써서 책을 출판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래 앉아 있는 건 자꾸 허리를 굵게 만든다. 그것도 나와 맞지 않다. 작가가 되는 일도 나의 길이 아니다 또 지웠다. 그렇게 몇 개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워나가니 몇 개 지우지 않았는데도, 내가 그동안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와 무관한 것임을 깨달아졌다. 


그러다가 임자를 만났다. 50이 되기 1년 전 인사동에 나가서 베트남 작가들 그림을 봤다. 촌스러운 그림이긴 했지만, 우리나라 전통 오방색이 주는 간결하고 선명한 에너지가 강한 감동을 주었다. 50이 되면 세 아이 모두 대학에 들어가고 난 후니 나의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오던 터라, 나중에 베트남 가서 작가들에게 그림을 배울까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민화강좌 광고를 보았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이 평생교육시설을 운영하는데 거기서 그 강좌를 개설하고 있었다. 전화하고는 남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등록했다. 이건 나에게 굉장히 희귀한 행동이다. 보통은 광고만 보다가 그냥 지나가고, 남편에게 물으면 돈 없으니 나중에 하라는 이야기에 또 주저앉고 그러는 게 나의 모습인데, 그때는 남편에게 물으면 못할 거 같았고, 등록하고도 한동안은 남편 모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상의 없이 수강료도 입금하고, 재료도 구입하고 그렇게 6개월이 넘게 민화를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로 유명한 H대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이후로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확인하고 지워나가는 것,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이 막히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 일이 아니기에 막히는 것이고, 막히는 길이 있으면 또 나에게 열린 다른 길이 반드시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접촉해 보고 지워나가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1. 아침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