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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Oct 13. 2023

2. 코로나와 치킨세트

인생노트

 추석이 다가오는데, 감기 몸살이 심했다.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라도 받고 싶었지만, 연휴 하루 전날 병원은 몰려온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항상 먼저 검사해 보자던 의사 선생님도 이번엔 그냥 감기약과 주사만 처방해 주었다. 단톡방에서 친구들에게 명절 잘 보내라 인사했더니, 친구 A는 코로나로 고전 중이라고 했다. 친구 A는 여태껏 모태 솔로이다. 아파도 아프냐고 물어봐 줄 식구가 없다. 뭐 자식 셋이나 되고, 삼식이 남편이 있는 나도 처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문득 내가 코로나 걸렸을 때, 카카오톡 기프트콘으로 치킨을 선물해 준 친구 B가 생각났다. 엄마가 코로나 걸리면 밥도 못 얻어먹는다며, 영양 보충하라고 치킨을 보낸 준 것이다. 과부마음은 홀아비가 알아준다고. 나이 든 여자의 고독은 나이 든 여자만 알 수 있나 보다. 남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지방에 있건, 서울 같은 집에 있건 남편이 보양하라고 나에게 치킨을 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친구 A에게 치킨 기프트콘을 보냈다. 엄청 좋아했다. 우리 단톡방 친구는 나를 포함하여 4명이다. A 모태 솔로, B는 돌싱이고, 친구 C는 나처럼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독할 때가 있다. 문득, 나이 들수록 우리 여자 친구들끼리 서로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간의 말 중, 남자들은 나이 들면 첫째도 아내, 둘째도 아내, 셋째도 아내가 필요하다지만(그러면서도 아내한테 잘하지 못하니, 참 어리석다.), 여자들은 돈, 친구, 건강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 친구들이야말로 우리 여자들의 노후 재테크 아닐까 싶다. 

교촌치킨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치동 카페는 학원, 학교, 시험 등등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는 엄마들의 모임으로 항상 만원이었다. 남자들은 여전히 중요한 인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골프 회동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인맥, 인적 네트워킹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도와준 것은 내가 만든 인맥의 사람들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혼자 방에서 절망에 울고 있을 때 전화해서 위로해 준 사람도,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 전복죽을 쑤어 병문안 온 사람도,  개인전에서 내 작품을 구매해 준 사람도 모두 의외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 중에서 나를 도울 사람을 예비해 두셨던 거 같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후 나는 도움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보답하기보다, 우연히 만난 도움이 필요한 사람- 모르는 사람,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 은혜에 보답한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Pay It Forward>가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A가 B를 도와주면 B는 A에게 은혜를 갚는 대신 C를 도와주고, C는 D를 도와주고.... 이렇게 도움이 흘러가는 것이다. 내 결혼식에 와서 축하해 준 친구들의 결혼식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결혼하자마자 빠듯한 생활비에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그들의 결혼식을 챙길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대신 여건이 되는 대로 후배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 주고, 장례식에 참석해 위로하였다. 후배들도 나의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받았던 것을 또 다른 누구에게 전한다는 마음으로 할 뿐이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보내어 나를 위로했듯, 하나님이 나를 보내어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신다고 생각할 뿐이다. 돌려받을 수 없는 사람을 돕는 일은 허비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잠언 11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허비처럼 여겨지는 베풂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인맥은 얼핏 눈으로 보면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인맥. 기브-앤-테이크의 계산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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