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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Oct 17. 2023

1.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독서 노트

왜 이 책에 끌렸을까? 처음엔 디테일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이 책을 읽기 전 리베카 솔닛이란 작가를 알지 못했다. 그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의 1/3 정도에서 페미니즘을 발견하고 나서였다.(남자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 볼까?) 그러고 보니 코로나 팬데믹 시기와 대학원 석사과정이 겹쳤던 지난 4년 간 서점을 가지 않았다. 스벅에 가서 생크림 카스텔라를 곁들여 자몽허니 블랙티를 마시며 책을 읽는 일은 나에게 가장 호사스러운 외출이다. 그런데 요즘 그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갑자기 서점이 떠올랐다. 이 갈증은 서점이라는 공간만이 채워줄 수 있는 일종의 문화적 갈증인 듯했다. 그런데 요즘도 오프라인 서점이 있을까? sns 핸드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요즘 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 집 근처 어디에 서점이 있었지? 머리가 하얘졌다.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분당 서현의 교보문고, 사당역 파스텔시티 반디 앤 루니스가 떠올랐다. 반디 앤 루니스가 다른 어떤 업체로 바뀌었던 거 같은데, 그게 아직도 있을까?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니 영풍문고가 영업 중이다. 지하철을 타고 그곳에 갔다. 가슴이 설레었다. 서점에 들어서니 깊이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흡족하다. 바로 이것이었구나.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가웠다. 이 책 저 책 구경하다 보니 스벅으로 채워지지 않던 허기가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문화적 허기도 배고픔만큼이나 인간에게 절실한 것이었구나. 그동안 서점에 진열된 책이 줄어든 거 같았다.(아쉬우면서도 오히려 좋았다. 넘쳐나는 것은 부담스럽다.) 실제 책을 쓰는 사람들이 적은 것인지, 매장에 진열된 책이 적어 보였다.


그중에서 분야를 넘나들며 20여 권의 책을 추렸다. 매일 아침 십 여 분 동안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인문학, 동양 고전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걷기에 관한 책도 서 너 권, 예술과 미학에 관한 책, 양자 역학, 우주, 시공간에 관한 책, 한문 독해법에 관한 책(사실 이 책을 사서 옆에 두고 논어, 도덕경, 장자 읽을 때, 참고하고 싶었다.) 등이 포함되었다. 예술 작업에 관련된 책을 살까 했는데, 이 책 <걷기의 인문학>의 내용이 맘에 들었다. 글씨도 작고 내용은 장황하다. 그런데 내용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수필은 다들 비슷했는데, 이 책은 디테일한 내용과 분야의 방대함이 독보적이었다. 철학, 문학, 도시 건설, 보행 산업등 여러 분야의 구체적 역사와 의미를 꿰뚫고 있다. 너무 세세하지 않은가. 그래서 글의 응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지만 묘하게도 읽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방대하고 구체적인 생생한 인용들. 사실 요즘 내 그림에 바라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생생하면서도 방대한 디테일. 그래서 리베카 솔닛의 글이 나를 저격했다.




산책은 인간이 두 발로 걸으면서 언제나 있었던 행위인 줄 알았다. 뭐 산책이 언제부터 있었는가.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길은 어디나 있고, 언제나 걸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걷지 못하는 길이 있고, 걷는 것이 모두 산책이 아니라는 구분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깨달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당연히 여겼던 일상의 주변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생긴다. 칸트, 루소와 같은 철학자들의 산책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걷는 것이 생각을 펼쳐준다는 것에 '그래 맞아. 나도 걸으면서 그걸 느꼈어.' 기쁘게 공감했다. 후설의 몸의 철학을 보행과 함께 연결해 주니 좀 더 편안히 그의 철학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 특히 낭만주의, 자연주의 시대의 작가들과 함께 언급된 보행의 역사를 읽으면서 대학시절 영문학도로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미술사에서도 낭만주의, 자연주의를 다루었는데, 그 시기는 조용한 중세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인, 많은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던 시대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20세기 도시가 들어서면서 도시 안에, 또는 교외에 걷기에 적당하지 않은 구도가 생겨나고 있다고 작가는 서술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 서울과 지자체에서 양재천, 탄천과 한강 고수부지, 그리고 서울 둘레길 등 걸을 수 있는 길을 잘 조성하고 관리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최근 안국역 한국공예박물관 옆에 이건희 기증작 미술관 건립 예정 부지가 임시적으로 건물 없는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큰 나무도 없고 키 작은 화초 사이로 오솔길만 있는 이 공간이 빌딩 숲 가운데서 인왕산, 백악산과 푸른 하늘 흰구름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도시 계획은 노후된 건물을 허물고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뻥 뚫린 공간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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