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존 모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문 Oct 18. 2023

5. 깜지와 우리 사이 언어

김깜지

"나중에는 깜지가 우리말을 할까? 우리가 깜지 말을 하고 있을까?"


깜지는 우리말을 흉내 내고, 우리는 깜지 소리를 흉내 내던 어느 날 딸에게 물었다. 


잠이 덜 깬 깜지

7년의 시간 동안 깜지와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배웠을까. 가끔 외출에서 돌아오면 늘어진 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쾌하게 달려온 깜지가 한참을 뭐라 뭐라 이야기한다. 유튜브에서 고양이 습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고양이가 이럴 땐 얘기를 충분히 들어줘야 한단다. 집사가 집에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거란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우울감이 생긴다나. 그가 한 말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집에 있던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와 서로 고자질하고, 거기에 한 놈, 한 놈, '으응, 그래. 그랬어. 어이구. 우쭈쭈' 하며 들어주듯이. 그렇게 깜지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면 깜지는 내가 자기 말을 다 알아들은 줄 알고 그제야 현관에서 거실로 유턴한다. ㅎ


나는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저만치 떨어져 엎드려서 나를 지켜보던 깜지가 어느새 내 무릎 앞에 와서는 고개를 들고, 러블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무 말없이 그저 그윽하게. 깜지의 이런 시선은 매력적인 남자의 시선처럼 보는 이를 무장해제 시킨다.  "깜지 밥 줄까? 배고파?" 물으면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네에~" 대답한다. 


자기 이름이 깜지인 줄 안다. 깜지가 안 보여서 "김깜지" "깜지야" 부르면 "네~"하고 어디선가 나타난다. 


침대 이불 속에 들어가 한참을 자다가 갑자기 뛰쳐나오면서 짧게, 그리고 하이톤으로 "엥" 한다. "아참, 밥이 있었지." 이런 뜻이다. 그리고는 밥그릇 앞으로 달려가 우적우적 건사료를 씹어 먹는다. ㅎㅎ 자다가 갑자기 밥 생각이 났던 것이다. 이런 깜지는 정말 어이없고 사랑스럽다.


이불 속에 들어간 깜지


때로는 방에서 혼자 자다가 나오는데 내가 없는 줄 알았다가 거실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앗' 하며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아! 엄마 여기 있었네." 반가움의 탄성이다. 그리곤 내게 달려와 부비부비한다.


간혹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소리를 내기도 한다. "나 찾아봐요." 그림 패널 뒤나, 문 뒤, 커튼 뒤에 숨어서는 자기 찾으라고 부르는 소리다. 그럼 찾아내서 "깜지 여기 있었네."하고 찾는 시늉을 해야 한다. 그러면 또 다른 곳으로 달려가 숨는다. 


때로는 침대 밑에서 나를 부른다. "왜 깜지야?"하고 물으면 블라블라 대답한다. "응 이불 속에 들어가 자고 싶어?" 혼자도 이불속으로 잘 파고든다. 그런데 가끔 나보고 이불을 들춰달라고 한다. 그래서 이불을 들춰주면 들어가면서도 또 뭐라 뭐라 한다. "엄마도 들어와서 같이 자자고?" 어떤 때는 "그래 같이 자자." 하지만, 대개는 "안돼. 엄마 할 일 있어. 너 혼자 자." 하고는 이불 위를 토닥토닥해주면 바로 잠든다. 


한 번은 혼자 편히 자고 싶어 출근한 아들 침대에 누었더니, 침대 밑에 와서 이불을 들춰달라고 하고, 이불을 들춰주면 들어가는 척하다가 나와서 우리 침대로 달려가기를 여러 번. 나중에야 이해했다. 아들 침대에서 자지 말고 우리 침대에서 같이 자자는 이야기였음을. 


한동안은 깜지가 침대 이불 위에 쉬를 싸곤 했다. 내가 무슨 일에 집중하면 조금 떨어진 곳에 엎드려 나에게 시선 고정하고 기다리다가, 한참을 기다려도 자기를 쳐다보지 않거나 자기와 놀아주지 않으면 방에 들어가 이불에 쉬를 쌌던 것이다. 그런데 쉬를 싸기 전에 깜지가 이불 위에 올라가서는 뭐라 뭐라 하며 사인을 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주저하며 불안한 톤으로 "엄마, 나 여기 쉬할 거다." 내가 그 소리를 미처 못 알아들으면 그날은 대대적으로 이불 빨래를 해야 한다. 가끔 그 소리를 알아들고 방에 쫓아 들어가 "안돼~" 하면 나를 약 올리듯이 냉큼 달려 나간다. "요놈이~" 나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거다.


깜지 쉬를 대비하여 준비한 방수 담요

때로 깜지가 나에게 길게 이야길 한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아주 진지하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ㅠㅠ "깜지야. 엄마가 정말로 다 알아듣는 줄 알고 있는 거야?" 


그래도 "깜지야, 간식 다 떨어졌어. 엄마가 나중에 다시 사다 줄게." 그러면 시무룩하게 "네에" 한다. 

"깜지야. 오늘은 아빠랑 시골 다녀올 거야. 오빠랑 집 잘 지키고 있어." 이러면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깜지가 가장 많이 하는, 정말 사람이 말하는 것 같은 언어는 두 가지이다. 단음절 단어. '엄마'와 '네~"이다. 깜지의 '엄마'와 '네'에는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머지 문장들이 자동 완성된다. 그걸 글로 옮길 수 없어 안타깝다. 하이톤이면서 길게 내는 "엄마"는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이다. 나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 또는 밥 이외의 원하는 게 있을 때이다. 깜지는 꽤나 수다스러운데, 이상하게 밥 달라고 할 때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밥그릇 앞에 앉아. 밥그릇만 쳐다보고 있거나. 밥그릇 앞에서 고개만 옆으로 30도 각도로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보고 있지 않을 때도 그 자세로 앉아 있다. '언젠가 엄마가 보고 밥 주겠지.' 이런 생각인가보다. 


나는 깜지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분별한다. 아이 키우는 엄마가 우리 아기 말한다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내가 깜지 키우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지만, 아이들도 남편도 옆에서 들으면서 나처럼 깜지의 말을 이해하니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듯하다. 깜지는 나의 말을 다 알아들을까?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할까.


가끔 궁금하다. 깜지가 밖에 나가서 다른 고양이를 만나면 대화가 통할까? 깜지의 언어는 인간과 고양이의 언어 중간 어디쯤으로 변형되어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6.약해서 악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