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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Oct 19. 2023

6.약해서 악하다

김깜지

병원에 다녀온 후 주먹만 한 깜지는 그에게 허락된 공간인 거실과 베란다, 다용도실을 돌아다니며 집안을 탐색했다. 이 낯선 환경이 이제 자신이 머물만한 공간인지. 그리고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동물들이 밥 주는 사람 알아본다고 했던가. 뭐 사람도 다르지 않다. 밥 잘 주는 사람, 돈 주는 사람 따라다닌다. 깜지는 내가 가는 곳마다 발뒤꿈치를 따라다녔다. 가끔 갑작스레 방향을 돌리는 발에 밟힐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제 엄마와 형제를 떠나 낯선 곳에서 고양이들과는 완전히 분리된 채, 인간들과 살아갈 깜지가 측은해서 잘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밖에서 길냥이로 지내다가 온 깜지는 목욕을 하지 않아 꾀죄죄했다. 쾌쾌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아 선뜻 손이 가진 않았고 나름 거리를 두었다. 그래서인가. 식구들이 모두 외출하고 나와 깜지 둘만 남으면 요것이 사납게 돌변해서 나를 공격하곤 했다. 그럴 때면 정말 무서웠다. 양말을 신지 않은 나의 맨발의 맨살을 집중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몇 번이고 놀라 넘어질 뻔하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식구들이 있을 땐 껌딱지처럼 나를 따라다니다가도 식구들이 없으면 사납게 돌변하는 깜지를. 혹시 고양이가 아니라 살쾡이를 데려온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고양이 사진을 보면 얼굴이 다들 둥글넓적하던데, 얘는 얼굴이 뾰족한 삼각형이다. 살쾡이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에 목사님께서 '원래 약해서 악한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욕을 잘하는 사람은 대개 몸이 왜소하거나 심약해서 어떻게 힘으로 안되니까 욕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큰 개는 존재만으로 위압감이 있으니 왈왈 대지 않는다. 오히려 덩치가 작은 개들이 더 왈왈 대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여자들이 집에서 악다구니하는 것도 사실 여자들이 약하고, 여자들의 의사가 존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야길 듣는 중에 집에 있는 깜지가 생각이 났다. 아. 무서워서 그러는 거구나. 내가 자기보다 덩치도 크고, 내가 혹시 자기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에게 사납게 구는 거구나... 그렇다면 내가 자기에게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알려줘야겠다 마음먹었다. 이후로는 옷 밖으로 드러나는 나의 맨발과 맨 손과 팔을 깜지의 공격에 그냥 맡겼다. 네가 그렇게 해도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그렇게 한 두 달 깜지는 나를 시험했고, 나는 깜지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어느 순간부터 깜지는 내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했다. 처음엔 등을, 그다음엔 머리를, 그리고는 검정 하트가 있는 배를 그리고는 치명적일 수 있는 목과 자신의 발톱을. 이제 깜지는 자신의 꼬리를 밟아도 나에게 사납게 돌변하지 않는다. 그저 놀라고 아팠음을 표시할 뿐.

깜지의 등은 검정으로 배는 온통 하얀 털로 덮여 있다. 그런데 하얀 배 한가운데에 검은 털이 하트 모양으로 있다. 완전 사랑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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