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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문 Nov 06. 2023

3. 차 우리기

좋은 차

어떤 차가 좋은 차일까. 좋은 차는 누구나 알 수 있다. 각각의 향과 맛의 차이는 차치하고, 일반적으로 맑고 부드럽고 매끄럽고 단 맛이 감돌고 목 넘김이 편하면 좋은 차다. 그러나 좋은 차의 확연한 특징은 처음과 나중의 맛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좋지 않은 차는 처음의 좋은 향과 맛이 금방 사라진다. 또는 금방 떫어지거나 써다. 녹차, 보이차, 우롱차의 경우 작은 다관에서 여러 번 우려내니, 먼저 우린 것과 나중 우린 것의 농도와 맛의 선명도가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맑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느낌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질이 낮은 차나 변한 차는 처음부터 별로일 수 있지만, 처음 맛이 좋더라도 나중 맛과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나중 맛을 본 후 인상이 찡그려지거나 마시지 않는 게 나을 뻔하였다는 생각이 든다면 좋은 차가 아님이 분명하다. 좋은 차는 마시면 기분이 좋고 몸이 편안해진다. 목 넘김이 불편하게 여겨지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차이거나 잘못 우렸거나 나쁜 차이다. 보이차는 '곰팡이 차' 혹은 '후발효 차'라고 불리는데, 혹 변질되고 상한 경우 그런 곰팡이는 간에 무리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버릴 첫 탕과 최고의 두 번째 탕

차는 건조 과정에서 아무래도 미세한 먼지가 앉을 수 있고, 또는 제조 과정에서 차끼리 부딪히면서 자체적으로 미세한 가루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차를 우리면 바닥에 여러 찌꺼기가 보인다. 물론 좋은 차일수록 찌꺼기도 맑고 깨끗하다. 나쁜 차는 시커먼 금속가루, 돌가루, 곰팡이 같은 것이 보인다. 아무튼 처음 우린 차 맛은 대개 깨끗하지 않다. 좋은 차는 첫 탕도 깨끗하다. 첫 탕을 살짝 맛보는 것은 차를 감별하는 훈련에 좋은 경험이 된다. 차의 표면에 있을지 모르는 불순물을 씻어내는 과정을 세차洗茶라 한다. 차의 불순물이 많은 경우는 세차와 첫 탕을 구분하여 우리지만, 불순물이 거의 없으면 세차를 생략하고 첫 탕부터 마셔도 된다. 차를 씻는 과정의 시간은 신경 써야 한다. 잎이 펴져야 그 사이 먼지들이 다 떨어져 나오는데, 그렇게 기다리다가 너무 우려 좋은 맛까지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세차 과정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예민한 과정이다. 한 번 우려보고 깨끗한 차이다 싶으면 세차를 생략해도 된다. 첫 탕부터 알맞게 우려서 마시면 된다. 그러나 두 번째 우려낸 차는 딸 셋 있는 집에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처럼 믿고 편안히 마셔도 된다. 두 번째 우린 차는 아무나 대접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동양화 하는 사람들은 붓을 물에 담가 모가 촉촉하게 적셔졌을 때 비로소 먹물이나 물감을 묻혀 사용한다. 뜨거운 물로 처음 차를 우리는 것은 마른 붓을 촉촉이 적시는 그런 느낌이다. 이를 윤차潤茶라고 한다. 세차와 윤차는 의미 중심을 어디 두느냐에 따른 차이이다. 둘 다 차가 잘 우러나올 수 있게 하는 준비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관에 적당량의 찻잎을 넣고, 끓인 물을 반쯤 붓는다. 1 분 정도 지나면 건조 시 오그라들었던 찻잎이 수분을 머금으면서 기지개 켜듯 펴진다. 찻잎이 이완되었다 싶으면 그 물은 모두 버린다. 찻잎이 쏟아지지 않도록 한다. Kalita 주전자 검은 뚜껑은 이때 유용하다. 물은 빠져나가고 찻잎 주전자 안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한 두 번 마실 양으로 부어 우린다.(매번 찻주전자 하나 가득 넣으면 마시는 속도와 알맞게 우리는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  이렇게 우린 두 번째 차를 찻잔에 담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셔보라. 나는 두 번째 우린 차를 대접받을 수 있는 귀한 사람임을 명심하면서. 차를 우리는 물로는  정수기 물보다 수돗물이 맛이 좋다. 수돗물은 미네랄 등을 여전히 함유하고 있어 살아있는 물이기 때문이다.


한 번에 우리는 차와 여러 번 우리는 차

홍차는 녹차, 백차, 우롱차와 달리 한 번에 우려 마신다. 그래서 차를 우리는 다관, 티팟 tea pot이 크다. 혼자 마실 때는 300~500cc, 여럿이 마실 때는 800cc~1000cc 정도가 적당하다. 녹차라면 여러 번 나누어 우리고, 홍차는 한 번에 많이 우린다. 혼자 홍차를 마시고 싶을 때 나는 커피 드립 주전자, Kalita 유리 주전자 500cc를 사용한다. 홍차는 물이 뜨거운 게 좋다. 그러나 너무 오래 팔팔 끓이면 물속의 산소가 다 빠져나가니, 끓기 시작하면 바로 전원을 끄는 게 좋다. Kalita 드립 주전자에 홍차를 적당량(차스푼으로 두 스푼 정도)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때 조용히 붓기 보다 찻잎이 한바탕 소용돌이를 일으키도록 시원하게 붓는다. 찻 잎이 여기저기 떠다니고 움직여야 차 맛이 좋다고 한다. 3분 정도 우린 후 짙은 붉은빛이 돌면 마신다. 홍차는 계속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며 마시는 게 좋다. 그래서 워머를 사용한다. 충분히 우러난 찻물을 찻잎과 함께 계속 두면 떫어질 수 있으므로 다른 티팟에 옮겨 식지 않도록 워머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마신다.

점핑
우려낸 홍차를 워머 위에 올려놓고 마신다.


반면, 녹차, 보이차, 우롱차는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다관에서 여러 번 우려내어 마신다. 수돗물을 끓여 다관과 숙우, 찻잔에 부어 용기를 따뜻하게 예열한다. 숙우는 다관(찻주전자, 티팟)에서 우려낸 찻물을 찻잔에 분배하기 전에, 맛이 고르게 섞이고, 마시기 적당한 온도로 식히는 데 사용하는 다관만 한 크기의 용기이다. 우리나라 다구에서는 사발 모양이고 중국 다관에서는 손잡이 달린 항아리(jar)가 많다. 찻잔에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도록 주둥이가 달려 있다. 유리로 된 것도 있고 도자기로 된 것도 있다. 


도자기 숙우

예열한 다관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절반이나, 2/3 정도 넣고 1분 정도 기다려 찻잎이 펼쳐지면 숙우로 옮긴다. 처음 우려낸 첫 탕의 맛을 본다. 괜찮으면 마셔도 되고 맛이 깨끗하지 않으면 퇴수기(큰 대접)에 버린다. 끓인 물을 넣어 본격적으로 우린다. 3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관의 찻물을 숙우에 옮긴다. 다관에서 찻물이 우러나도 위의 찻물과 아래 찻물의 농도가 현저히 다르므로, 찻잔에 따르기 전 반드시 숙우(공도배)로 옮겨 한 번 골고루 섞이도록 한다. 다관의 찻물을 숙우로 옮기면서 찻물이 고르게 섞이고, 또 한숨 뜨거운 기운이 빠져나가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된다. 여럿이 마실 때는 작은 다관에 물을 가득 부어 여럿이 마시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하고, 혼자 마실 때는 2/3 정도씩만 부어 조금씩 우리는 게 좋다. 차는 술이 아니므로 찻잔에 따를 때 넘치도록 따르지 않고 2/3이나 절반 정도 부어 마시면 뜨겁지 않아 좋다. 또한 찻잔 바닥에 찌꺼기나 먼지가 가라앉을 수 있으니 잔을 비우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지 않아도 된다. 바닥에 남은 찻물은 퇴수기에 버려가며 마시면 좋다. 여러 번 우릴 때는 뒤로 갈수록 다관에서 우리는 시간을 길게 잡는다. 



차를 우리는 방법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아보았다. 이후에는 차와 다구의 용도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다루어 보기로 한다. 혼자 차를 마실 때는 첫 탕과 재탕 정도면 양이 충분하다. 차를 마시다 목 넘김이 떫거나 아릴 때가 있는데, 이는 차를 너무 오래 우려서일 수도 있고, 또는 너무 많이 마셔서일 수도 있다. 그러니 차가 몸에 좋다고 욕심내지 말고, 삼탕, 사탕의 찻물은 숙우나 큰 머그잔이나, 유리 주전자에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식은 차로 마셔도 좋다. 냉차의 맑고 시원한 느낌 속에 단맛과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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