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 기온이 뚝 떨어졌다. 새벽 시간엔 이불을 끌어당기고 혹 열린 문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차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다구를 꺼냈다. 다구는 차를 우려 마시는데 필요한 도구를 말한다. 보통 다기 세트라고 한다. 차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많겠지만, 차를 즐겨마시는 아마추어로서 내가 경험한 차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지난주 인사동에 가서 '동방미인'이란 대만 우롱차를 샀다. 그동안 맛본 우롱차는 친구가 준 우롱차와 대만 지우펀의 티하우스에서 맛본 '동방미인'과 그보다 한 등급 위인 최상급 우롱차 '귀희'였다. 40g에 7만 원 정도였으니 상당한 고가였으나 집에 와서 마시는 내내 후회되지 않았다. 인사동 차 판매점에도 '귀희'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조금 저렴한 '동방미인'을 구입했다. 맛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서였다.
우롱차는 홍차, 보이차와 같은 발효차이다. 녹차는 생차로 찻잎을 그대로 덕은(기름 없이 팬에 볶는다) 것이라면, 발효차는 쪄서 말리고 쪄서 말리고를 반복하여 만든 것이라고 알고 있다. 생차인 녹차는 그 느낌이 날카롭고 차가워서(어떤 이는 이를 맑다고 표현한다) 나에게는 거부감이 든다. 녹차와 홍차 사이에 황차라는 것도 있다. 여태껏 마셔본 차 중에 황차는 우롱차인 '귀희'에 버금간다. 황차를 유리 다완에 우리면 찻물이 호박 보석보다 맑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마시면 몸이 훈훈해진다. 수년 전, 관악도서관에서 주최한 'Living Book Libaray' 행사에서 비건식 하는 분을 만났다. 북촌에서 한복을 디자인하는 분이었다. 후에 북촌 숍으로 놀러 갔는데, 가게 한쪽에는 차를 마시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낮고 너른 통나무 탁자에 다구가 준비되어 있었고, 숯불 화로 위에는 주물 주전자의 물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참이나 차를 대접받고 일어서는데 그분이 좋은 차라며 '황차'를 권하였다. 아는 스님이 절에서 직접 만든 거라며,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였다. 차에 완전 무지했던 나에게 60g에 7만 원인가 8만 원인가 하는 차를 권했던 것이다. 좀 찜찜한 기분으로 집에 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차를 마실 때마다 매번 나 자신이 귀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그런 차였다. 차에 매료된 것이 아마 그때부터였나 보다. 좋은 차를 권한 분을 잠깐이나마 의심했던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에 버금가는 차로 '명차'가 있다. 친구가 나의 전시를 축하하며 선물한 차 캔에는 'Famous Chinese Tea'라고 되어있고,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어서 정확히 무슨 차인지 모르겠는데 고급 차라고 했다. 마셔보니 역시 황차에 못지않은 맑고 단 기운이 있는 부드러운 차였다. 이 차도 혼자 조용히 아껴 마셨다. 언젠가 이 차를 만나면 다시 구입하려고 캔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차를 마시니 온몸이 땀에 촉촉이 젖는다. 홍차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해야겠다. 인사동에서 차를 파는 여러 가게를 발견했지만, 비싸지 않을까, 속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번에 산 우롱차 '동방미인'은 70g에 25000원으로 가성비며 차의 질이 만족스러웠다. 대표적 발효차로 우롱차와 보이차, 홍차를 들 수 있는데, 우롱차는 반발효차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롱차에서는 녹차와 같은 생차의 비릿한(나쁘지 않다) 풀향이 나면서도 입 안 전체를 달고 맑고 부드러운 것으로 코팅하는 것 같았다. '귀희'차는 거기에 귀하고 은은한 꽃 향기까지 더해진다. 한편 발효차인 보이차는 그동안 나와 인연이 맞지 않았는지, 싸고 질이 낮은 차였는지, 지푸라기 같은 냄새가 나고, 목 넘김이 떨떠름하고 거칠었다. 복부에 지방이 많아 몸이 차가운 나는 보이차를 마시면 몸이 훈훈해져 한여름에도 열심히 마셨던 때가 있었지만, 우롱차를 맛본 뒤로 보이차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제대로 된 보이차를 만나지 못한 탓이리라. 집에 있는 보이차는 버릴까 생각 중이다. 좋은 차를 만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다가 좋은 차를 만나면 좋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기쁘다. 한동안 행복한 만남을 지속할 수 있다. 다음엔 다구(차의 도구)와 차를 마시는 기본적인 방법에 대해 말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