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달리기

5. 치우침 없기를 바라는 달리기

by 어라스님

#5.


류시화씨의 글에서 처음 레푸기움이라는 단어를 알게되었다. 자신만의 공간, 내 존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곳, 피난처, 휴식처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하는데, 어떤 특정 공간이 해당되기도 하지만, 내 마음, 영혼에 몰두하는 시간을 말하기도 한다. 특정 공간과 시간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회복을 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단어만 늦게 접했지, 우리 모두는 그런 치유의 행위를 해왔었다. 종교나 철학, 그리고 예술과 문학, 사랑하는 가족 등. 그 모든 것이 나만의 레푸기움인 것이다.


청풍명월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자연속 고요함과 맑은 정서를 마음의 쉼터로 일컫는데, 그 어떤 가르침보다 큰 힘을 가진 곳이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연 속 공간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는 자연의 가르침을 참다이 들을 수 없고, 회복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만들어 걷고 뛰다보면 그 가르침을 흡수하게 된다.


내가 출가해서 처음으로 선원에 수행을 하러 갈때였다. 봉암사를 가기 위해 점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 틈에서 한 비구 스님을 보게되었다. 서로 눈인사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사찰로 걸어들어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초참자였고, 그는 몇 철을 수행한 선배였다. 스님의 말 가운데 가장 인상깊에 남아있는 말이 있다. 강원에서는 틀을 배우고, 선원에서는 그 틀을 없애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틀이 없는데, 굳이 만들어서 지우는 일을 하는 이유는, 인간이 나약해서, 그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런 형식을 취하게 한다는 것이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그 방법이 맞겠고, 어떤 이에겐 또다른 집착을 만드는 일을 초래할 수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지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 있지않은가. 인간은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해 손이라는 형식을 만들었지만, 그 형식에 치우쳐 다시 본질을 놓친다는 말이다.


만화가는 엉덩이로 그림을 그린다고 이현세씨가 말했다. 스님들은 엉덩이로 수행을 한다. 그러다가, 발로 보림(보림: 깨달음 이후에도 수행을 이어간다.)을 해야하는 것이다. 러너들은 일상에서 수행을 하다가, 회복을 위해서 뛰는 것인데, 그 길이 바로 레푸기움이다. 발로 걷고 뛰면서 그제서야 자연과 소통하고 내 영혼을 맑게 깨우게 된다.


물론, 러닝이 수행이고, 보림을 일상에서 일궈갈 수도 있다. 선후야 어찌되었건 내 일상에서, 내 형식에서 깨달음과 보림을 해내고 있다면, 형식은 어느새 사라지고, 본질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다.

한번도 수행과 기도라는 것을 접한적 없던 사람도, 이 길에서는 참다운 신앙인이나 수행차처럼 그 감성을 갖추게 된다. 부처님 말씀처럼 모든 러너는 그럴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대신, 형식이 사라진 본질에 서 있는 러너만 그렇다.


결제와 해제를 반복하는 선원에 다닐때, 한 거사님을 길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다. 아침 시간이었는데,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나를 지나쳐 가다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스님 한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우리는 사느라 바빠서 한가할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새벽근무후 이 아침에 퇴근하고 있는데, 스님들은 지금 의자에 앉아 한가하신거 같은데 왜 그렇게 사는건가요?”

“…………”


아주 잠깐 말없이 있다가 말을 이어갔다.


“거사님, 아까는 뭔가를 물어본다고 하셨지않나요? 그런데 질문이라기 보다 제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그렇잖아요. 일반인들은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사는데, 스님들은 편하게 살고…”


“거사님, 거사님 눈에 스님들이 그렇게 비춰졌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무얼 하다가 여기 앉아있는건지 모르시고, 또 스님들 생활을 다 모르시잖아요. 그저 보이는 이 장면만으로 그렇게 생각하신거에요.”


이렇게 시작한 대화에서 말미에,


“다른 사람의 생활을 다 깊숙이 들여다 보지 못하면, 남의 생활이 다 부럽고 좋아보이기 마련입니다. 승려에게도 말 못할 사연과 힘겨움이 있어요. 그러니 주어진 일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조금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시면 됩니다. 제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면 감사합니다. 대신 저도 뭔가 아직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시간이었어요. 거사님이 생각하는 만큼 여유있고 부러워보일 정도의 여건이 아닙니다.”


한 10여년전 이야기로 내가 달리기 전인, 일반의 스님으로 그저 앉아있었던 모습만으로도 이런 평가를 받았는데, 지금 가민 시계를 차고, 나이키 러닝화를 신는 나는, 언제든지 비난의 위치에 설 수 있고, 취미를 수행이라 변명하는 위선자로 비춰질 수 있다.


나의 전공 첫번째 레푸기움인 좌선수행 역시 산중도피, 현실도피, 세상의 일에 담을 쌓고 혼자 여흥을 즐긴다는 평가와 두번째 레푸기움인 달리기 마저 여러 잣대에서 해석될 수 있기에 우리는 각자만의 레푸기움을 다양하게 만들어놔야한다. 휴식과 영혼의 성장을 위해 갖는 내 시간을 타인에 의해 재단되고 방해를 받는다면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보림을 한다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승려답다거나 승려답지 못하다는 그 생각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은 출시 본이 아니며, 만든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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